교육부의 '대학 내 자율전공 확대' 기조에 발맞춰 자율전공 신입생을 대거 모집하려던 한서대가 학생들 반발에 부딪혔다. 이 대학에선 항공운항학과가 인기가 높은데, 졸업을 위한 실습시간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 수만 늘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충남 서산에 있는 사립대인 한서대는 22일 '자유전공학부 운영 규정 개정안'을 공지했다. ①2025학년도에 신설되는 계열별 전공자율학과(무전공)의 전공 배정 인원을 '당해 각 학과 입학정원의 50%'로 정하고 ②기존 운영 중이던 자유전공학부 소속 자유전공학과의 전공 배정 인원을 '제한 없음'으로 설정하는 내용이 뼈대다. 쉽게 말하면, 특정 학과로 쏠리지 않게 할 만한 별도 제한 없이 무전공과 자유전공학과 정원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항공운항학과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성적 순대로 경쟁해 항공운항학과로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자유전공학과 학생들에게 제한 없이 항공운항학과 선택권을 주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논리다. 실제 이 학과의 2024학년도 정시 합격생 평균 성적은 2.5등급으로 전체 전공 중 가장 높고, 경쟁률도 5.9 대 1로 전체 학과 평균(1.92 대 1)을 훨씬 웃돈다. 한서대는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훈련 목적을 가진 비행장을 태안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항공운항과 학생들은 무전공·자유전공학과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는 학교 측 조치가 시행될 경우 비행 실습이 부실하게 진행될 거라고 걱정한다.
항공운항과 학생들은 200여 시간 실습 시간을 채워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졸업을 앞둔 학생 중 다수가 아직 이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항공 산업이 쪼그라들었고 △비행기 부품을 미국에서 제때 공급받지 못해 실습용 비행기가 줄어든 탓이다. 이 학과 3학년 A씨는 "(활주로가 있는 충남 태안) 비행 교육이 밀리고 있는 마당에 인원까지 늘리겠다니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이런 우려는 괜한 게 아니다. 한서대의 2025학년도 항공운항학과 입학 정원은 50명이다. 개정안에 따라 자유전공학부(55명) 전원과 무전공 입학생(40명) 중 최대 25명(당해 학과 정원의 50%)이 항공운항과를 선택할 경우 내년 신입생만 130명이다. 여기에 복학생 등을 합치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극단적 가정이 아니다. 최근 주전공을 선택한 2023학년도 자유전공학과 학생 20명 중 16명이 항공운항과를 선택했다.
만약 졸업할 때까지 실습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면 사비(생활비·체류비)를 들여 미국 등 해외 비행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한다. 1학년 B씨는 "지난해 수험생일 때 입시 설명회에서 태안 (비행장) 얘기만 했지 미국의 '미' 자도 안 꺼냈던 학교 관계자가 최근 갑자기 '졸업하고 싶으면 미국으로 가라'고 했다"며 "쫓겨나는 듯한 기분"이라고 성토했다.
항공운항학과 학생회장 등 262명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생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학과 정체성이 모호해져 소속감이 저하될 것"이라는 의견서를 교무처에 냈다. 개정안 전면 철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교육부·국민신문고 민원 제기 △학교 행사 보이콧 △시위 및 대자보 작성 등의 단체행동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대학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서대 교무처 관계자는 "개정안은 확정된 게 아니다"라며 "학생들의 반대 의견을 받아 기획위원회 안건으로 올렸기 때문에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