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인 듯 대표 아닌' 박단… 전공의 어깃장에 여야의정 협의체 '좌초 위기'

입력
2024.10.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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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정 협의체 의사계 참여 논의 급제동
박단, 이재명 회동 후에도 "내년 증원 철회"
협상론 가로막는 전공의 탕핑에 불만 고조
"자발적 사직, 박단이 대표하지 않아" 지적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일부 의사단체 참여로 급물살을 탔지만 전공의들이 불참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첫발을 떼기도 전에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전공의단체 대표는 대통령(4월)과 여당 대표(8월)에 이어 야당 대표까지 만났지만 '의대 증원 철회' 주장을 되풀이하며 또다시 사회적 대화를 거부했다. 기성 의사들은 물론 전공의 사이에서도 반대만 부르짖으며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전공의단체 대표의 행보에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27일 정치권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비공개 회동은 빈손으로 끝났다. 박 위원장은 회동을 마친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대전협 일곱 가지 요구안도 변함없다"고 밝혔다. 또 "내년 봄에도 전공의와 학생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2025년 증원부터 철회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야당의 중재 시도마저 허사가 되면서 여야의정 협의체는 반쪽짜리 출범조차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단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협의체 참여를 결정한 후 다른 의사단체는 물론이고 대한의사협회(의협)까지 "두 단체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박 위원장은 즉각 "정치인에게 편승하지 말라"고 반발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협의체 합류를 긍정적으로 논의했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와 상급종합병원협의회는 최종 결정을 보류했다.

협상론이 부상할 때마다 번번이 어깃장을 놓는 박 위원장에 대해 의사 사회에서도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데다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이 진행 중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비현실적인 증원 철회 요구가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의대 정원 재조정 시 발생할 입시 혼란과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2026학년도 정원부터 원점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전공의들이 교수를 중간 착취자라 비판해도 그간 전공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대외적으로 다른 목소리는 자제해 왔다"며 "박 위원장의 독단적 행태에 교수들도 불만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 수련병원 원장도 "의료 문제는 병원, 의사, 환자 모두가 당사자인데 박 위원장은 소통 없이 불란만 만들고 있다"며 "사태 해결 의지가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공의 사이에서도 박 위원장의 대표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직 전공의인 임진수 의협 기획이사는 박 위원장이 "의협이 사직 전공의 한 명을 앞세워 혼선과 분란을 야기하고 전공의 괴뢰 집단을 세우려 했다"고 페이스북에서 비판하자 댓글을 남겨 "자발적으로 사직한 전공의 의견은 선생님(박 위원장)만 대표하고 의견을 모아보겠다는 제 자구책 중 하나를 괴뢰 집단으로 매도하는 건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또 "전공의들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의협의 소통 노력을 차단하면서 진짜 혼선과 분란을 초래한 건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비판했다.

엄밀히 따져 박 위원장은 사직했기 때문에 전공의 신분이 아니다. 대전협 회장직도 8월 31일 임기가 끝났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의 대표성을 인정하더라도 사직 전공의 절반 이상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한 상황에서 회원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내년 증원 백지화를 관철한다 해도 전공의들이 '자발적 사직'을 주장하는 만큼 대전협이 복귀를 강제하거나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직 전공의를 중심으로 새로운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사 출신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직 전공의 단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