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권위의 프로바둑 기전인 ‘제47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우승상금 7,000만 원) 최종 결승 진출자는 박정환(31) 9단과 이지현(32) 9단으로 압축됐다. 특히 이 대회 디펜딩 챔피언으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신진서(24) 9단이 탈락한 가운데 생애 첫 명인전 타이틀 사냥에 나설 이들의 맞대결엔 벌써부터 스포트라이트도 쏠리고 있다.
25일 한국기원에 따르면 이날 경기 성남시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47기 명인전’ 패자조 결승에서 이 9단은 변상일(27) 9단에게 230수 만에 신승했다. 이날 대국은 초반부터 시종일관 수읽기에 기반한 난타전으로 진행됐다. 실제 대국 초반부터 대마 사활을 둘러싼 상변 전투는 중앙 접전에 이어 하변 끝내기 수순까지 번졌다. 결국, 이 대국에선 변 9단이 하변 마무리 부문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가운데 이 9단에게 ‘제47기 명인전’ 결승 티켓까지 내주고 정리됐다. 이 9단은 이번 승리에 힘입어 변 9단에게 이달 초 당했던 ‘제29회 LG배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 4강전 패배 설욕에도 성공했다. 이로써 지난 7월 말부터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253명이 출전해 이어왔던 명인전의 치열한 반상(盤上) 전투도 종착역을 앞두게 됐다.
이번 명인전 결승 진출에 성공한 두 선수를 비교하면 객관적인 전력에선 박 9단이 우세하다. 이달 국내 랭킹 2위인 박 9단은 이미 5개의 세계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포함해 국내·외 각종 기전에서만 모두 35개의 우승컵을 수집한 초일류 기사다. 세계 바둑계 현재권력인 신 9단의 득세 이전까진 국내에서 59개월 연속 랭킹 1위를 지켜낸 K바둑계 간판스타다. 박 9단은 이 9단과 상대전적에서도 7승 4패로 앞서 있다.
이에 맞선 이 9단은 뒤늦게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전성기에 들어선 유형이다. 군 입대 직전인 지난 2020년 당시 ‘입신’들로 명명된 프로 9단 기사들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진 ‘제21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우승상금 5,000만 원) 우승과 지난해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서 한국 팀원으로 출전, 단체전 금메달 획득이 눈에 띈 성적표였다. 그랬던 이 9단은 최근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9회 LG배 기왕전’에서 깜짝 4강에 진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선전에 힘입어 이 9단의 국내 랭킹은 전월 대비 3계단 끌어올린 11위에 마크됐다.
바둑전문채널인 K바둑의 해설위원인 백홍석(38) 9단은 “’제47기 명인전’ 결승에 진출한 두 선수의 기록적인 측면만 살펴보면 박 9단이 앞선 게 사실이지만 최근 수직 상승세인 이 9단의 기세를 감안하면 알 수 없는 승부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그동안 46차례에 걸쳐 이어졌던 ‘명인전’ 우승컵은 불과 10명에게만 돌아갔다. 현재까지 이창호(49) 9단이 13회로 가장 많고 조훈현(71, 12회) 9단과 서봉수(71, 7회) 9단, 이세돌(4회, 은퇴) 9단, 박영훈(39, 3회) 9단, 고 조남철(2회) 9단, 신진서(2회) 9단 등이 타이틀 보유자로 기록됐다. 이어 고 김인 9단과 최철한(39) 9단, 신민준(25) 9단 등도 1차례씩 정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