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법 피해자로 인정받은 흑인 또는 라틴계 남성 5인, 일명 '센트럴파크 파이브'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의 사건 발생 당시 '사형제 부활'까지 요구했던 트럼프와 이들의 '35년 악연'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21일(현지시간) "센트럴파크 파이브가 트럼프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며 이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최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트럼프가 자신들의 명예를 짓밟는 거짓 발언을 했다는 게 소송을 건 이유다.
발단은 35년 전 사건이다. 1989년 4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서 한 백인 여성이 조깅 도중 폭행·성폭행을 당했고, 흑인 또는 라틴계 10대 남성 5명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의 자백을 이끌어내 재판에 넘겼다. '센트럴파크 파이브'로 불린 5명은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자백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끝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0여 년 후 반전이 이뤄졌다. 다른 성폭행·살인 범죄로 복역 중이던 수감자가 자백하고, 그의 유전자정보(DNA)가 현장 증거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 파이브에 대한 유죄 판결은 2002년 무죄로 뒤집혔다. 이들은 뉴욕시를 상대로 인종차별 등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4,100만 달러(약 565억5,000만 원)의 합의금 지급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트럼프와의 '악연'은 1989년 그가 뉴욕타임스(NYT) 등 지역 언론 4곳에 낸 '사형제 부활 촉구' 전면 광고에서 비롯됐다. 사실상 '센트럴파크 파이브를 사형에 처하자'는 주장이었다. 훗날 영국 가디언, 미국 시사주간 타임 등은 "이 광고가 배심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 사안은 지난달 10일 대선 후보 TV토론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사형 촉구 광고'를 비판하자, 트럼프는 "그들은 유죄를 인정했다"고 맞받았다. 또 "나는 '그들이 유죄를 인정했다면 그들은 사람을 심하게 다치게 했고 결국 죽인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센트럴파크 파이브는 "우리는 유죄를 인정한 적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수사 중 자백은 강요에 따른 것일 뿐, 법정에선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는 얘기였다. 이들은 "트럼프의 허위 발언 탓에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겪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캠프는 발끈했다. 스티븐 청 캠프 대변인은 "절박한 좌파 활동가들이 해리스의 '선거운동 실패'에서 미국인의 주의를 돌리려고 제기한, 또 다른 경솔한 선거 간섭 소송"이라고 비꼬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센트럴파크 파이브가 과거 (범죄) 사건에 책임이 있음을 암시하는 공개 성명을 계속 발표해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