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 보안 속 '목소리'로만 인사한 한강 "노벨상으로 일상 달라지지 않기를"

입력
2024.10.17 18:19
2면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으로 첫 국내 행보
대중 앞 서지 않고 목소리로만 전달해
"지금처럼 책 속에서 독자 만나고파
작가의 황금기인 60세까지 6년 남아
마음속에 굴리는 책 집필에 몰두하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후 한강 작가의 첫 공식석상 등장이 예고된 건 17일 오후 5시. 한강은 HDC그룹이 주관하는 포니정재단의 올해 혁신상 수상자다. 서울 강남구 포니정홀에서 열린 시상식은 비공개 행사였지만, 국·내외 기자들과 한강을 보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어 몇 시간전부터 주변이 붐볐다. 한강은 그러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따로 마련된 통로를 이용해 시상식장에 바로 입장했다.

한강은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라며 기자회견, 국내 언론 인터뷰 등을 일절 고사했다. 17일 시상식도 기자들의 입장이 제한된 채 진행됐다. 기자들은 시상식장 밖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한강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혁신상을 받는 자리이니 노벨문학상 관련 언급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한강은 “허락해 주신다면 (혁신상) 수상 소감 앞에 간략하게나마 노벨문학상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는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신 일은 특별한 감동”이라고 인사했다.

이어 한강은 “개인적 삶의 고요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며 “저의 일상은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라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1970년 11월생인 한강은 “약 한 달 뒤에 만 54세가 된다”면서 “작가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 사이라고 가정하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6년 동안 지금 마음속으로 굴리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처럼 다른 쓰고 싶은 책이 생각 나서 앞에 놓은 상자 속 세 권의 책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강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행사장을 떠났다.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친 기자들의 "소감을 부탁드린다"는 요청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정식 수상 소감은 올해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그가 낭독할 에세이를 통해 들을 수 있을 전망이다.

포니정 혁신상은 현대자동차를 세운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기리는 상으로, 지난달 그의 수상이 결정됐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