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법치

입력
2024.10.17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무속인의 개입이) 왜 위법인지 모르겠습니다. (관저를) 어디로 갈 거냐는 (대통령실이) 재량권을 갖는 거 아닙니까.” 15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이 “관저 선정 과정에서 무속인 개입 여부는 왜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느냐, 의혹의 절반을 빼놓고 감사가 진행됐다”고 몰아붙이자, 최재해 감사원장의 답변이다. 무속인이 대통령 관저 위치 선정에 관여했는지 여부가 호기심 대상이 될지 모르나,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며 예리한 법 감각을 보여줬다.

□최 감사원장의 예리함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의혹의 핵심인 김건희 여사가 대표였던 코바나컨텐츠 후원사 ‘21그램’이 관저 인테리어를 맡게 된 배경을 감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키포인트가 아니다”라고 답해 탄식이 쏟아졌다. 또 감사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한 건도 진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료 협조가 잘 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9월 공개된 감사 결과는 “누가 업체를 추천했는지, 담당자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 확인 못 했다”였다.

□대통령실 비서관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감사를 멈출 정도로 감사원은 허술할까. 국감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 사용은 현 정부 들어 3배 넘게 급증했다. PC 휴대전화 USB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은 공무원의 경우 거부하면 해당 기기를 봉인해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어 감사원이 자주 사용하는 최종병기다. 그런 무기를, 대통령실을 향해서는 꺼내지도 못한 것이다. 이렇게 ‘맹탕 감사’의 실상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최 원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는 “농부의 개가 거지를 쫓을 수 있는 것은 개가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개 뒤에 농부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있다고 한다. 최 감사원장의 법 감각이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뒤에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택적 법치’가 감사원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법조인이 대통령인 정권에서 반복되는 일이라, 지켜보는 마음이 더 무겁다.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