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로 돌아가자고? 트럼프가 부추긴 미국 대선 ‘젠더 대결’

입력
2024.10.18 04:30
14면
여성은 해리스, 남성은 트럼프로 결집
흑인·라틴계 남성 포섭 공들인 트럼프
여성 유권자는 노골적 혐오에 ‘진저리’

민주당 흑인 여성(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백인 남성(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은 올해 미국 대선의 핵심 각축 구도는 ‘젠더(성별) 대결’이다. 과거보다 흐릿해진 백인·비(非)백인 간 전선과 달리 대립각이 더 첨예해졌다. 가부장제 부활을 도모하는 트럼프가 긴장 관계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난 시험관 시술 아버지”

트럼프는 16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가 녹화 방영한 전날 조지아주(州) 타운홀 미팅(유권자와의 대화)에서 “나는 체외인공수정(IVF·시험관) 시술의 아버지”라며 “민주당보다 더 IVF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재임 중 그의 잇단 보수 대법관 임명으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이 2022년 연방 차원의 임신중지(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고 그 일로 IVF 제한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에서 사실상 거짓 주장이었다. 트럼프 캠프는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여성 청중만 참석한 해당 행사는 여성 유권자 지지율에서 해리스에게 밀리고 있는 트럼프가 열세 만회를 위해 마련한 기획 이벤트였다. 그러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흑인과 라틴계 남성이 트럼프 쪽으로 이동하며 정치 진영 간 인종별 지지율 격차는 줄고, 대신 성별에 따른 균열은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라고 15일 보도했다. 여간한 노력으로는 해리스의 여성 지지층을 잠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성별 분열 현상은 4년 전보다 강해졌다. 2020년 대선에서 5%포인트였던 트럼프의 남성 지지율 우세 정도가 8월 말 WSJ의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10%로 확대됐다. 해리스와 트럼프 간 여성 지지율 격차는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를 상대로 기록했던 수치(12%포인트)보다 커진 13%포인트였다.

소외 남성 자극하는 트럼프 전략

이런 성별 결집 구도 고착화의 배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일단 ①시대의 흐름이다. 여성 권리 신장과 가부장제 해체가 '백래시'(진보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를 수반하며 단층선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②관심 이슈 차이도 작용했다. 상대적으로 남성이 집중하는 관심사가 경제인 데 비해 여성은 임신중지 등 재생산권(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각종 여론조사 결과다.

여기에 다시 포개지는 게 ③분열적인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다. 교외에 사는 고학력 백인 여성보다 젊은 유색인종 남성을 우선 공략한다는 게 투표율 등을 감안한 트럼프의 선택이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NYT에 따르면 가난한 백인 남성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를 포섭하면 가부장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노년층 여성은 딸려 올 것이라고 트럼프 측이 계산했을 수도 있다. 미국 럿거스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잭 브래티크는 16일 AP통신에 “가부장적 질서 회복을 바라는 불안하고 화난 남성들이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라고 말했다.

상습적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트럼프의 캠페인 메시지에 시대착오적인 여성 혐오가 깔려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모니카 헤세는 14일 “트럼프 같은 성범죄자의 여성 보호 맹세는 닭장을 지키겠다는 여우의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번 대선에서 여성층이 해리스 편에 뭉치는 것은 트럼프 등장 뒤 10년간의 학습 효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