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는 청소년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입력
2024.10.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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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마녀가 되는 주문'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매일 학급 한두 개가 사라진다. 한국의 10대는 하루 평균 38여 명이 자살한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뜰 때 어디에서는, 혹은 산책하거나 밥을 먹는 동안 누군가는,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자살은 꾸준히 10대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사히 나이를 먹더라도 결국은 자살을 택할 수 있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두 배가 넘는다. 전체 자살률 역시 굳건히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예년에 비해 사망자는 줄었는데 자살자는 늘었다. 절망과 우울은 어떤 전염병보다도 확실하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

작가 단요의 ‘마녀가 되는 주문’의 등장인물 ‘서아’는 학교 옥상에 멍하니 있다가 마법소녀가 되겠냐는 제의를 받는다. 학교에서 교육이나 연구 목적으로 제공하는 가상공간에는 비밀의 방이 있다. 옛날에 실패작으로 방치된 게임 세상이다. 여기에는 주기적으로 괴물이 나타난다. 괴물을 죽이면 게임이 끝난다. 괴물을 최대한 늦게 죽이면 게임 세상을 오래 만끽할 수 있다. 시간이 되면 관리자를 맡은 학생이 괴물을 해치운다. 초기 디자인 때문에 관리자는 마법소녀 복장으로 활동한다. 학생들은 알음알음 관리자를 찾아가 매주 비밀의 방에서 휴식을 누린다.

작품의 배경인 학교는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위해 특별히 설립된 기관이다. 학교는 능률과 합리의 이름으로 재능 있는 학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학생들은 재학 기간에 일찌감치 연구보고서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기업의 후원을 약속받는다. 만일 어디에도 투자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졸업 후 엄청난 학비를 빚으로 짊어진다. 규칙은 명료하다. 학생들 사이에는 촘촘한 계획표, 학년마다 암암리에 설정되는 실패의 기준, 고강도의 스트레스가 만연한다.

괴물 게임은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처럼 학생들이 숨을 돌리도록 돕는다. 마법소녀의 ‘매지컬 파워’는 자살을 예방한다. 혹은 희망자에 한해 제대로 자살하도록 만들어 준다. 평소보다 더욱 비밀리에 열리는 방에서는 괴물이 이용자를 살해한다. 그 사람은 충격 때문에 현실에서도 죽는다. 물론 죽음은 중대한 문제이므로 관리자는 잘 생각하라며 한 달의 유예기간을 둔다. 대부분은 그사이 마음을 바꾸지만, 어떤 아이들은 “저마다 절박함과 확신”을 갖고 결정을 고수한다. 게임 속 마법소녀는 독약을 제조하는 마녀와 다름없다.

마법소녀가 되겠냐는 제안이 자살 예방 지침에 들어맞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서아는 관련 제안을 받을 당시 옥상에서 속으로 자살을 연습하던 중이었다. 서아에게 말을 건 선배 ‘현’도 똑같은 시기를 겪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이런 지침을 권한다. ‘너무 자세히 캐묻지 말고 분명하지 않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과중한 부담을 주는 질문은 삼가십시오. 베푸는 듯한 느낌을 주지 마십시오. 집중해서 차분히 들으십시오. 솔직하고 진실되게 말하십시오.’

심완선 SF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