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유일한 지역 대형 서점이었던 계룡문고가 폐업한 바로 다음 날, 대전에선 이틀간 빵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틀간 14만 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인파가 구름같이 몰린 걸 보면서 텅 빈 계룡문고 사진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상대 모를 야속함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누굴 탓할까요. 잠시 상상해 봤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빵집처럼 서점 앞에 길게 줄을 선다면.
2주 뒤, 신기하게도 상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네, 한강 작가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단 5일 만에 그가 쓴 책(전자책 포함) 100만 부가 나갔다고 하니 대단한 열기입니다. 출판 시장에도 활기가 돕니다. 종이책 읽는 인구 감소, 교과서 수요 감소가 겹치면서 도산 위기에 몰렸던 인쇄소들도 24시간 가동 중입니다. 한강의 노벨상 특수를 목격한 다른 출판사들은 대비에 나섰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유력 후보였던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의 공저인 '권력과 진보'의 출판사인 생각의 힘은 노벨상 발표 전 미리 중쇄에 들어갔습니다. 실제로 수상 직후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김애란, 김금희, 박상영 등 다른 소설가들의 책들도 판매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눈앞에서 '책 생태계'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생각합니다. 읽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책을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요. 책도 결국 출판 시장의 상품입니다. 책이 많이 팔려야 출판사에 수익이 나서 질 좋은 책을 공급할 수 있고 작가도 돈을 벌겠지요. 작가가 먹고살 만큼 인세를 받아야 다른 책을 또 쓸 여력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지난 16일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간담회에서 말했듯이 "(한 작가의 책을) 2,000부를 팔기도 어려운" 게 한국 문학의 현실입니다.
출판 시장 부흥을 위한 강력한 주문은 어쩌면 '책 읽기'가 아닌 '책 소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 옷 지르듯이, 우울해서 빵을 사듯이, 책을 습관적으로 사는 소비 행태를 만드는 거지요. 이것만큼 다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빨리 나오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한강의 책을 '굿즈' 사듯 종별로 쓸어 담는 사람들을 목격하면서, 이런 상상이 터무니없지 않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번 주말, 한 주간 고생하신 여러분도 책 쇼핑에 동참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