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이후 헌법재판관 뽑으려 했다"... 이토록 뻔뻔한 정치인들

입력
2024.10.16 04:30
4면
헌재 '6명 심리 가능' 고육책 냈지만
'인선 지연' 사과 없이 제멋대로 평가
국민에 사과하고 신속하게 임명해야


"헌법재판소 스스로 입법 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했다. 국정감사 이후 재판관 추천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아쉽다."

더불어민주당의 14일 논평이다.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6명으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심리가 가능하다고 결정하자 뒤늦게 이렇게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 위원장 탄핵 시도에 대해 신속·공정한 결론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가세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이 17일이면 임기가 끝난다. 7명 이상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헌재 기능이 마비되는데도 여야 모두 한가하게 뒷짐만 졌다. 사법기관에 대한 국회의 모욕이다. 우리는 이런 국회를 바라보고 있다.

아울러 국민을 능멸하는 일이다. 소송에만 수백만~수천만 원이 드는데 재판관이 3명이나 빠진 결론을 납득할 수 있을까. 반대로 국회는 권한쟁의심판을 헌재가 재판관 3명 없이 판결하면 받아들일 수 있나. 국회는 자기 돈 안 쓰고 소송을 하니 상관이 없다는 건지 의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정감사 이후에 헌법재판관을 뽑으려 했다'는 주장은 가관이다. 국회가 재판관을 뽑는 건 법적 의무다. 이들의 임기 만료 시점은 6년 전 임명될 때부터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후임을 정하지 않고 말만 앞세웠다. 두 달 가까이 '민주당이 재판관을 2명 추천하는 게 맞냐'를 두고 싸우기만 했다. 이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다.

"헌재가 입법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했다"는 민주당 주장은 어이가 없다. '재판관 7명 이상이 아니면 심리가 불가능하다'는 조항은 국회가 법을 바꿔야만 고칠 수 있다. 정치권은 이럴 생각이 없으면서 헌재가 못 했다고? 올 8월 기준 헌재에 계류된 사건은 1,215건에 달한다.

국회의 직무유기는 한두 번이 아니다. 오석준 대법관 임명 동의까지 4개월, 대법원장 후보자 부결 사태 이후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후임 취임까지 2개월을 허송세월했다. 여야 모두 재판 지연을 지적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는데도 뻔뻔하게 사과 한 줄 없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오매불망 선고를 기다려왔는데도 저희 때문에 고통에 몸서리치는 국민께 사과드리고 최대한 빠르게 후임 재판관을 임명하겠습니다. 혹여나 있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위해 우리 편인 재판관 1명을 더 확보한다는 정치공학적 생각에서 벗어나겠습니다." 나아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고도 후임이 없으면 전임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 그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의무다.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