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최근 삼성이 처한 상황을 "사면초가의 어려움 속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 사령탑인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3분기(7~9월) 삼성전자 잠정실적 발표 직후 사과문을 내 위기론을 인정한 데 이어 삼성전자 등 7개 주요 계열사의 준법 경영을 감독하는 외부 기구의 수장도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것.
이찬희 위원장은 15일 2023년 연간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삼성은 현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내 최대 기업이지만 어려움에 놓여있다"며 "외형적 일등을 넘어 존경받는 일류 기업으로 변화하여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삼성이 맞은 역경은 △빠르게 바뀌는 국내외 경제 상황 △노조 등장 △구성원의 자부심과 자신감 약화 △인재 영입의 어려움 △기술 유출 등이다.
이 위원장은 "과거 삼성의 어떤 선언이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폐기하고 사법 리스크의 두려움에서도 자신 있게 벗어나야 한다"며 "구성원들에게 '우리는 삼성인'이라는 자부심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컨트롤타워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책임 경영 실천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최고경영자(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가 불가피하다며 "이 과정에서 있을지 모르는 준법경영 위반 위험에 대해 준감위가 준엄한 원칙의 잣대를 갖고 감시자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으로 컨트롤타워 부활이 수면으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삼성그룹은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사업별로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전자계열), 금융경쟁력TF(금융계열), EPC TF(삼성물산 계열)를 뒀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위기에 대처하려면 새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앞서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보다 15.5% 낮은 9조1,000억 원을 냈다고 알렸다. 당시 전영현 부회장은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신다"며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며 사과문을 냈다. 실적 발표에 경영진이 입장을 낸 건 삼성전자 창립 이래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