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대구형무소에서 보내신 세 장의 엽서를 어머니께서는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마 이날을 기다리셨나 봅니다. 아버지께서 겪으신 참혹한 역사가 세계적 기록이 된다면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거예요."
제주 4·3 사건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사망한 고(故) 문순현 희생자의 딸 혜형씨는 독일 베를린 전시 공간 팔레포퓔레르에서 14일(현지시간) 열린 4·3 기록물 전시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군·경·토벌대가 제주에서 1만4,0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투옥·탄압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날 전시는 제주 4·3 사건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적 관심 및 여론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평화재단 등이 기획했다. 문혜형씨가 언급한 아버지 엽서를 포함한 1만4,673건의 문서 및 영상 자료는 지난해 11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고 내년 5월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개막식에 참석한 임상범 주독일대사는 "인권, 자유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며, 화합과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독일에서 이번 행사가 개최된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전시는 20일까지 열린다.
제주 4·3 사건 관련 기록물 등을 소개하는 전시회 및 이날 함께 진행된 심포지엄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지난 10일)과 함께 치러져 큰 관심을 받았다. 한 작가가 2021년에 펴낸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 4·3 사건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자신의 문학에 입문하는 이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이 작품을 골랐다.
무엇보다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커진 작가 한강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제주 4·3 사건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기대가 전시장 안팎에 가득했다. 한 작가에 대한 관심이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면,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14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전에도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잘될 것 같았지만 수상 이후 빛이 '팍' 보였다"며 웃었다. 제주 4·3 희생자 유가족인 오영훈 제주지사도 14일 제주도청에서 주관한 회의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의 아픔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됐다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제주 4·3 사건의 의미를 세계에 알리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