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발행사 살린다더니… 설익은 'AI교과서 수익 공유안' 결국 폐기

입력
2024.10.16 04:30
교육부, 지난해 "'변형된 구독형' 검토 중" 발표
지난 1월 "재산권 침해" 법률 자문 받고 철회
진선미 의원 "정책 변화 경위·배경 소명해야"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내년 초중고교에 도입되는 가운데,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했던 교과서 대금 정산 방식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걸 뒤늦게 확인하고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 시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법률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안부터 발표해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아본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올해 초 AI 디지털 교과서 가격 체계로 '변형된 구독형' 제도를 도입하려고 법률 자문을 받았다. 그 결과 "변형된 구독형은 위법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받고 최근 도입 방침을 철회했다.

대형사 독과점 막으려던 '변형된 구독형', 알고 보니 위법

변형된 구독형 제도 도입은 지난해 6월 8일 교육부가 발표한 'AI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에 포함됐다.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 발행사에 개발비를 보전해주는 기존 가격 책정 방식으로는 양질의 교과서 개발에 한계가 있다며, 발행사가 학교와 계약한 권수에 따라 구독료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대신 AI 교과서 도입 첫해인 내년에는 발행사 수익 일부를 회수해 모든 발행사에 균등 배분하는 변형된 구독형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이렇다. 종이 교과서와 달리 디지털 교과서는 발행사가 유지 보수 및 데이터 관리 비용을 계속 들여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본이 충분한 대형 발행사가 결국 AI 교과서 시장을 독과점할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폐단을 막고 이익 일부를 공유해 중소 발행사의 참여도 촉진하자는 게 교육부의 논리였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1월 11일 교육부는 변형된 구독형에 대해 △재산권 침해 여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 해당 여부를 검토하려 법률 자문을 했다. 그 결과 "변형된 구독형은 발행사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공권력 행사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법률상 근거도 없다"며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공정거래법 저촉 여부에 대해선 "정책적 결정에 따른 일이라 발행사 간 경쟁 기회를 제한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구독형은 유지한다지만... "교육부, 정책 변화 경위 소명해야"

현재 교육부는 AI 교과서의 변형된 구독형 방식 도입 검토를 철회한 상태다. 다만 교육부 관계자는 "(법률 자문에 따르면) 각 발행사에 일괄 적용하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지 변형된 구독형 자체가 위법이란 건 아니었다"라며 "디지털 교과서에 구독 방식을 적용한다는 계획은 여전히 동일하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부가 최소한의 위법 여부도 검토하지 않고 정책 추진안을 발표한 것은 경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뒤늦게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혼란을 겪게 된 것은 물론, 시장 독과점 방지라는 정책 기대 효과마저 사라진 셈이다. 진선미 의원은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관계 법률에 위배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 사항"이라며 "교육부는 기존에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의 변화에 대해 경위와 배경을 국민 앞에 충실히 소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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