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마틴 루서 킹의 '꿈'과 95년의 현실

입력
2024.10.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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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백만인 행진


1995년 10월 16일 미국 수도 워싱턴D.C 내셔널몰 광장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100만 명’이 운집했다. “흑인 남성의 새로운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엄존하는 유무형의 인종 차별에 흑인들이 뭉쳐 함께 맞서자는 결의의 ‘백만인 행진(Million Man March)’ 행사였다. 아내 살해 혐의로 기소된 흑인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 재판, 이미 성폭행으로 실형을 살고 가석방된 프로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또 다른 성폭행 뉴스가 잇달아 보도되던 무렵이었다. 내셔널몰 광장은 63년 8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게 꿈이 있다”고 외쳤던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의 바로 그 공간이었다. 킹 목사의 그 꿈을 환기하고, 미국 흑인들의 오늘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날 행사는 ‘전국 아프리카계 미국인 리더십 서밋’이란 인권단체를 이끌던 흑인 무슬림 지도자 루이스 파라칸(Louis Farrakhan)의 제안에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등 흑인 인권운동 단체와 각계 지도자가 동조하면서 성사됐다.

새벽 6시 무슬림과 개신교 종교의식으로 시작된 행사는 각계 저명 흑인 지도자들의 12시간에 걸친 주제별 연설로 이어졌다. 상징적 흑인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 킹 목사의 장남 마틴 루서 킹 3세, 작가 마야 앤절로, 해방신학 철학자 코넬 웨스트 등이 연단에 섰다. 그들은 흑인 공동체의 연대와 존엄, 어린이와 여성 등 약자에 대한 폭력 근절,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한 조직과 기업의 육성 등을 촉구했다.

경찰 당국은 참가 인원을 40만 명으로 추산했지만 보스턴대 원격감시센터가는 87만 명(오차범위 25%), 즉 최대 110만 명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대회 이름처럼 남성이 중심에 선 대회였다는 페미니즘 진영의 비판도 있었다. 흑인 여성들은 2년 뒤인 97년 10월 25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에서 더 성대한 ‘백만 여성 행진’을 개최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