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자에게 가혹하다고?

입력
2024.10.1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운전대를 지근거리에 두고 맥주 한잔의 개운함을 끝끝내 뿌리치는 자와 그렇게 못하는 자. 에너지가 꽤 들어가는 이 선택의 순간에 매번 '기꺼이 하지 않기'를 결행하는 우리는 잇단 사건에 번번이 허탈해진다. 세계적 무대에 서는 가수부터 전 대통령의 자녀까지, 참 '알 만한 사람들'이 왜. 대범하게 술을 먹은 뒤 운전을 하고 일부는 사고까지 내고 심지어 한 명은 운전자를 바꿔 속였다. 귀가가 늦어지더라도 기꺼이 대중교통에 몸을 실은, 음주운전하겠다는 지인을 잡아다가 기꺼이 택시에 태워보낸 그 고생을 돌이키면 허탈감은 분노가 돼 버린다.

기자들은 수습기간 동안 음주 사건 교육을 특히 엄격하게 받는다. 음주 단속 기준이 되는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를 달달 외우고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실제 음주 사고를 취재할 땐 농도를 소수점 세 자리까지 보고해야 한다. 정확성을 우선으로 하는 본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치에 따라 위험도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기사 가치도 완전히 달라져서다. 길거리에 흉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피의자의 행적을 뒤쫓듯, 만취 운전자들에게도 같은 시각으로 접근하라고 배운다.

그렇게 파고들어 쓴 유명인 음주운전 기사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댓글이 있다. '사람이 한 번쯤 실수할 수도 있지, 동선까지 들추는 건 가혹하다'는 거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팬심을 먹고산다지만 씁쓸해진다. 그가 술을 얼마큼 마셨고(음주운전 혐의), 사고 피해자는 어떤 상태이며(위험운전치상 혐의), 그런 그를 말리는 이가 하나도 없었는지(음주운전 방조 혐의) 여부는 자극적 보도행위가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도 활용되는 중요한 사실관계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명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보도하는 일이 외려 음주운전 경각심을 낮추기도 한다는 아이러니 탓이다.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도망 가더라도 '술타기'로 음주량을 교란하면 혐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황당하지만 실제로 가능한 이 일은 치열한 보도로 인해 되레 대중에게 '유용한 꼼수'로 각인됐다. 음주 사실을 인정하는 피의자를 두고도 결국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하지 못한 건 수사기관에도 뼈아픈 경험이었다.

음주운전은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적절한 형량범위 내에서 확실하게 처벌받게끔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형사정책연구·김현준)는 연구자들의 조언이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음주운전 행위는 법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본보기를 거듭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침 음주 호흡조사 전 술을 마신 운전자를 처벌하는 '술타기 방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통과에만 의미를 둘 게 아니라, 수사기관이 증거를 꼼꼼하게 챙기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위드마크(음주 단속을 못했을 때 혈중알코올농도 추산) 개선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운전 당시 음주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법을 고려하면 위드마크는 유무죄를 가리는 중요한 도구인데도, 그 한계상 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가 적잖다. 한국인에게 맞는 위드마크 공식으로 수사 정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들로 운전대 앞 고민이 무용한, 그야말로 음주운전자에게 가혹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신지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