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말하지 않기'를 통해 그 누구보다 강렬한 전쟁 반대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 등에서) 전쟁이 치열해져 날마다 죽음으로 (사람들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느냐." 한강이 지난 11일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에게 전한 기자회견 고사 이유다. 한강은 같은 날 110글자 분량의 서면 감사 인사를 전한 것 이외엔 굳게 입을 닫았다. 수상 발표 닷새째인 14일까지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소설가이자 시인으로서 쓰기가 본업인 한강의 이례적이고도 의도된 침묵은 그 자체로 선명한 전쟁 반대 행위가 됐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언론이 그의 결단을 보도했다.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우엔엔(UNN) 등 우크라이나 언론을 통해서도 전파됐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도 한강의 뜻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힘을 보탰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쓴 한강이 행동으로 작가의 윤리, 문학의 윤리를 완성한 것이라는 상찬이 많다. 관련 기사엔 "아름답고 품격 있는 선택" "그 자체로 문학적 결정" 등의 댓글이 달렸다.
출판사들은 여전히 한강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입장을 내 '한강 신드롬'에 불이 붙기를 기대한다. "직접 메시지를 내는 것이 전쟁 피해자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기자회견과 잔치는 다르다" 등 아쉬워하는 시각도 있다.
한강의 공식 육성은 올해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 수락 연설을 통해 들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달 17일 서울에서 열리는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해 발언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고(故)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을 기려 인문학 지원 등을 하기 위해 설립된 포니정 재단의 올해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이 지난달 선정됐다.
노벨상처럼 권위 있는 국제상 수상자들이 영광을 과시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수상자들의 반응이 다양해졌다. 한강처럼 자축을 자제하거나 시상식 발언을 통해 국제 문제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환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시상식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대중문화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021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의 성 차별,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배우, 감독들의 보이콧이 이어졌고 톰 크루즈는 트로피를 반납했다.
노벨문학상 역사에서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폴 사르트르가 1964년 최초로 수상을 거부했다. 식민 제국주의에 반대한 그는 서방 중심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부르주아적 문학 줄 세우기 등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깜짝 발표된 후 한동안 침묵하다 뒤늦게 수상 수락 의사를 밝혔지만 시상식에는 다른 일정이 있다며 불참했다. 문학계에서는 올봄 미국 유명 작가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국제 문인 단체 '펜(PEN)' 미국 지부인 펜 아메리카가 주는 문학상 후보 지명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