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59) 부통령이 대선을 3주가량 앞둔 12일(현지시간), 자신의 건강 검진 결과를 전격 공개했다. '약간의 근시로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나, 안경이나 렌즈 없이 읽기 활동 가능' '매일 유산소와 코어 근력 운동' 등 세세한 내용까지 담아 "훌륭한 건강 상태"임을 자랑한 것이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잖아도 최근 건강·인지 능력 저하 논란에 시달리던 차였다. 자신이 '슬리피(sleepy·졸린) 조'라고 놀려댔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이후, '고령 리스크'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모양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조슈아 시먼스 백악관 부통령 주치의는 이날 2쪽 분량 서한을 통해 해리스의 지난 4월 건강 검진 결과를 공개했다. 계절성 알레르기·두드러기 등 흔한 피부질환과 경미한 근시 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모친의 대장암 등 가족력이 있었지만, 해리스 본인은 당뇨·고혈압·심장질환·암 등 별다른 병력도 없었다. 3세 때의 맹장수술이 유일한 수술 이력이다.
또 '바쁜 스케줄에도 매일 유산소 운동·코어 근력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매우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은 가끔 적당량을 마신다'는 내용도 담겼다. 시먼스는 해리스에 대해 "행정부 수반, 국가원수, 군 통수권자 등 대통령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회복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리스 캠프의 이언 샘스 대변인은 엑스(X)에 "이제 당신 차례다, 도널드 트럼프"라고 썼다. 해리스보다 19세나 많은 트럼프를 향해 '건강 상태를 제대로 인증'하라는 우회적 공격이었다.
실제 트럼프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잦다. 지난 1일에는 이란을 북한으로 지칭하는 말실수도 했다. 그럼에도 건강을 둘러싼 의문에는 좀체 답하지 않고 "전체적 상태가 탁월하다"는 식의 간략한 설명으로 뭉개고 넘기기 일쑤다. 해리스는 이날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트럼프)와 그의 팀은 미국인이 그가 무엇을 하는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지 실제로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꼬집었다.
같은 날 트럼프는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이자 해리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주(州) 코첼라를 찾아 경쟁자에 대한 맹폭을 이어갔다. 그는 유세에서 "해리스와 극좌 민주당이 이 주를 파괴했다"며 "캘리포니아는 잃어버린 낙원이 됐지만 우리가 되찾겠다"고 말했다. 불법 이민, 고물가 등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 탓에 캘리포니아가 망가졌다는 주장이었다.
발언도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NYT는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가 지난달 29일 뉴욕에서 고액 후원자들과 만찬을 하던 중 '선거 자금을 더 내라'는 취지로 압박했다고 전했다. 해리스를 향해선 "정신지체(retarded)"라고 막말을 퍼부었고, 그를 지지하는 유대계의 머리를 검사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자리에는 유대계 출신 억만장자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모습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해리스와의 선거 자금 격차 탓으로 보인다. 유세 등 선거 운동에 매진해야 할 시간을 모금 운동에 빼앗기고 있다는 게 트럼프의 불만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나선 뒤 3개월 만에 모은 자금은 1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트럼프의 1년치 모금액보다 많다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