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가고 싶다"던 한강, 지난달 발표한 시에서 '고통 다음에 오는 것'을 말했다

입력
2024.10.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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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한 달 전
문학과사회 2024년 가을호에 신작 두 편의 시 발표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한강(53) 작가의 최신작은 소설이 아닌 시다. 지난달 나온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의 문학계간지인 '문학과사회' 2024년 가을호에 시 두 편을 발표했다.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가장 최신의 한강 작품 세계를 만날 기회다. 노벨위원회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유로 밝힌 강렬한 시적인 문장의 원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1994년엔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난해 11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로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강은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은) 이제는 더는 안 하고 싶어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이 계속 내리고 너무 춥고, 이제 저는 봄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음 소설에선 '밝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두 편의 시에서 한강은 여전히 '고통'과 '어둠'을 이야기한다. 한강의 유일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를 두고 "한강의 (시의) 화자들은 고통과 마주하는 일을 피할 생각이 없다"(조연정 문학평론가, 수록 해설)고 한 것처럼.

고통 이후를 기다리는 이야기들

시 '(고통에 대한 명상)'은 새장의 새를 잠들게 하려고 헝겊을 새장에 씌우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다. '북향 방'에는 북쪽을 바라보는 방에서 사계절을 지낸 화자가 등장한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방에서 머문 뒤 그는 말한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라고.

문학평론가인 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두 작품 모두 한강의 작품 세계와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봤다. 송 교수는 "한강 작가가 쓰는 언어가 밝은 자리를 출생지로 둔 것들이 아니라 어두운 자리, 익히 알려진 대로 한국사의 비극과 그와 연동된 개인의 어두운 내면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고통에 대한 명상)'에 관해 송 교수는 "자신을 길들이려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이 어둠을 거두려 손을 내밀어줄 거라는 '믿음을 동반한 기다림'의 자세와 '기억이라는 행위가 타자의 고통을 상쇄하는 응답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읽힌다"며 "두 테마 역시 한강의 작품에서는 중요한 부분들"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고통에 매몰되진 않는다. '밤 속에 하얀 가슴털이 자란다고 했다 솜처럼/ 부푼다고 했다 (...) 기다린다고 했다/ 횃대에 발을 오그리고/ 어둠 속에서 꼿꼿이'((고통에 대한 명상))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조금씩 사전을 읽는다'(북향 방)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 어둠은 어둠으로만 남지 않는다. 절망적이지 않다.

문학평론가인 박상수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보통 고통이라는 것을 빨리 치료하고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두 작품 모두 고통, 어둠, 밤에 대해서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고통에 대한 명상)'은 고통 이후를 기다리는 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향 방'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지만 여기에 익숙해지면 동공이 작은 빛에도 활짝 열리듯이 어둠이 사람을 예민하게, 빛이 가득할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8만 부 증쇄

한강 시 약 60편을 엮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노벨문학상 특수를 누리고 있다. 14일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이 시집은 노벨문학상 발표 전까지 11년 동안 12만 부가 팔렸고 발표 직후 급히 증쇄에 들어가 8만 부를 찍었다.

독자들에겐 시인으로서의 한강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 시집에 수록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서시', '괜찮아' 등을 찍어서 올리거나 필사해 올리는 게시물이 늘고 있다.

이 시집의 편집자였던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주간은 "(편집 당시) 시집 원고를 마주하면서 시 쓰기와 소설 쓰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이 어우러지면서 작가가 인간의 내면의 아픔, 상처, 상흔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한강 작가의 마지막 시집일 수 없으리라는 강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