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노벨문학상 수상작 사러 왔어요"… 한강 작품 깔린 서점가 '북적북적'

입력
2024.10.11 13:16
문 열기 전 줄 서고, 구매 예약 이어져
대학 동문들 '환호'... "놀라고 기뻤다"


" 오픈런 해서 수상작 사는데 성공했어요. 오늘 기분 너무 좋은데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 앞. 설렘 가득한 표정의 시민들이 삼삼오오 줄을 서기 시작했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온 채윤원(27)씨는 들뜬 얼굴로 "평소 한강 시집과 소설을 즐겨 읽었다"면서 "어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잠 한숨도 못 자고 책을 사러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편인데 소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전날 소설가 한강(54)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이튿날 서점가는 그의 작품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점이 열기 전부터 줄을 선 이들은 원하던 책을 손에 들고 흐뭇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고가 동이 나 어쩔 수 없이 예약만 걸어두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오픈런'에 '예약 대기'도... "수상작 궁금해"

예상보다 긴 줄에 놀랍다는 반응도 나왔다. 10m가량 늘어선 줄을 본 시민들은 "사인회도 아닌데 이렇게 줄을 선 거야?" "이거 설마 한강 줄이에요?"라고 물으며 서둘러 대기 행렬에 합류했다. 경기 용인에서 왔다는 안성규(37)씨는 "평소 한강 작가님을 좋아하는 어머니께 책을 구해다 드리면 좋을 것 같아 오게 됐다"면서 "이렇게 서점에 사람이 몰리는 건 처음 본다"며 얼떨떨해 했다. 구매자가 몰리자 일부 서점은 동일 작품은 한 사람당 한 권씩만 구매하도록 제한을 뒀다.

재고가 부족해 빈 손으로 돌아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교보문고 강남점의 경우 한강 작품이 품절돼 사려면 구매 예약을 해야 했다. 김미선(60)씨는 "한강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는데 수상작이라고 하니 궁금해서 사러 왔다"면서 "일찍 나오면 있을 줄 알았는데 책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송경남(56)씨 역시 "한강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나왔는데"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외국인 고객도 눈에 띄었다. 미국인 루벤 카란자(59)는 "아침이 되자마자 구입하러 왔다"면서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인 서사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이 좋다"고 설명했다. 벨기에인 사비나 리멘슈나이더(56)는 "이전에 영문판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전개 방식이 인상 깊었다"면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왔다"고 했다.


동문들 수상 소식에 '환영'

한강의 모교인 연세대 동문들도 환호했다. 이진명 연세문학회 회장은 "어제 회원들끼리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수상 소식이 공유되자 다들 놀랐고 많이 좋아했다"면서 "한강 작품에 대한 서평을 모아 카드 뉴스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강은 연세문학회 출신은 아니지만, 회원 중에 그를 동경하는 이들이 많아 단체방에선 늦은 시간까지 기뻐하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연세대 재학생 목지수(25)씨 역시 "이 학교를 지원한 계기가 한강 작가였다"며 "어제 발표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눈을 질끈 감고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온라인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이 과거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유해 도서로 지정, 폐기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채식주의자를 도서관에 배치하고,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해 줄 것을 촉구한다는 민원을 접수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특정 도서만 폐기하라고 지시를 한 적이 없다. 각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에서 자체 판단을 해서 폐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작가의 작품을 권장하지는 않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연 기자
이정혁 기자
허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