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위협이 고조되면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개인소득이 줄어드는 경우에는 '핵무장 지지여론'이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핵무장을 추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는 정치적 상황이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의 일상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10일 '핵무장 여론의 실체'를 주제로 진행한 세미나에서 정상미 국립외교원 연구교수·이경석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핵무장과 관련한 찬반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제재로 인해 개인소득이 25% 줄어 소득감소를 영구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경우'에도 핵무장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찬성 응답은 37%에 그쳤다. 3명 중 1명꼴이다.
'개인소득이 25% 줄더라도 6개월 안에 회복이 가능한 경우' 핵무장을 찬성한 대답(58%)보다 21%포인트나 적었다. '개인소득 25% 감소 효과가 최대 4년까지 지속되고 대내외적 상황 변화로 제재 효과가 완화될 경우'에도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53%로 나타났다. 이경석 교수는 과거 핵무장을 강행하다 국제사회 제재로 타격을 입은 파키스탄의 사례를 참고해 '개인소득 25% 감소'를 변수로 넣었다. 조사는 6월 엠브레인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78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진행됐다.
이 교수는 "현재 높은 핵무장론은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대중들이 한국 과학기술 협력과 경제안보 협력이라는 정보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핵무장 지지여론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파기라는 상황으로 치달을 때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해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59.4%였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파기되고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38.2%로, 21.2%포인트 감소했다. 미국이라는 버팀목이 없다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른바 '핵무장 콘크리트 지지층'의 존재도 확인됐다. 이 교수는 "그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한국이 핵무장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5~40%가량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대외적 여건에 따라 핵무장 여론은 지속적으로 50%대를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정상미 교수는 핵무장 찬성 여론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국제 위상'을 제시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세계 핵 클럽(핵보유국)에 가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줬을 때 핵무장 찬성 여론이 62%로 치솟았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P5'로 불리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물론 모두 핵보유국이다.
동시에 국제 위상은 핵무장 반대 여론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국제 규범 미준수국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핵무장 찬성 여론은 37.6%까지 떨어졌다. 정 교수는 "대중은 안보환경 변화보다 국제 위상 변화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 연구 결론"이라며 "전문가들의 논의나 연구자들의 분석이 이 지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홍예림 버지니아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생이 남북 군사력 차이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한미 핵확장억제력에 대한 신뢰도가 달라진다는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조 교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강도는 미국의 핵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신뢰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며 "오히려 연령대별 미국에 대한 신뢰 성향과 남북군사력 차이가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사회를 맡은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1970년대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 핵문제는 인공지능(AI)과의 넥서스(연계)를 고려해 구체적인 정책과 전략이 나오고 있는데 정치권과 학계, 언론이 굉장히 좁은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여론 추이를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