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가축 전염병 검사실, ‘수의법의학 센터’라는 미래 [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⑥]

입력
2024.10.11 08:00
동물 부검 현장 르포

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2022년 경찰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은 55.7%에 그치고, 그나마 송치된다 하더라도 법정에 기소될 확률은 31.9%에 그칩니다. 불송치, 불기소 사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대당한 동물 상당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이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 과학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동그람이는 지금까지 동물 부검이 범행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또 실패한 사례를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수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동물 부검 체계가 나아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부검) 시작하겠습니다."

9월13일 낮 3시경. 경북 김천시 농림축산검역본부 부설 동물병원은 말 한마디에 공기가 확 바뀌었다. 평범한 직장인처럼 일상 대화를 나누던 여섯 명 직원들의 눈빛도 바뀌었다. 그들의 시선은 작은 고양이 사체 한 구에 쏠려 있었다. 이미 생명력을 잃은 사체를 옮기는 손길도 조심스러웠다.

경기도의 한 주거지에서 발견돼 경찰이 부검을 의뢰한 사체였다. 겉으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아, 부검에서 타살의 흔적이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경찰은 요구했다.

실제로 마주한 사체에서도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외견상 의심할 만한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부검만 수차례 해온 전문가의 시선은 달랐다. 복부가 다소 불룩해 보이는 점을 발견하자 곧바로 엑스레이 촬영을 실시했다. 엑스레이로 확인된 복부 상태는 ‘탈장'. 이 사실만으로 사인을 확정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부검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빽빽한 털과 두꺼운 가죽으로 둘러싸여서 출혈 같은 큰 외상이 아니면 죽음에 이른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진상을 밝히려면 부검의 역할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마침내 털과 가죽 밑에 숨겨진 외상의 흔적이 하나둘 드러났다. 김아영 수의연구사가 수상한 정황을 포착하면 기록 담당 직원은 소견을 정확히 기록하고, 촬영 담당 직원은 김 연구사가 지목한 부위를 촬영했다. “뭔가 특이 소견이 발견된 것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특정 부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는 림프절이라는 부위인데 현재 매우 붉게 변해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태와 매우 다른 양상이기에 기록을 남겨서 향후 검사 결과와 종합해볼 예정입니다.
김아영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사

사체 곳곳에 이상한 지점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본 부검은 약 1시간 30분가량 계속됐다. 긴 시간동안 김 연구관을 비롯한 직원들의 눈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검을 통해 확보된 세포 샘플은 의문점이 발견되면 약독물검사실과 바이러스실로 보내진다. 외상이 없을 경우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독극물과 바이러스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검사 결과를 종합해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가 내놓는 소견서가 수사기관으로 전달된다.

하루에 부검만 2건.. “진실 밝히는 게 우리의 일”

질병진단과를 10년 넘게 지켜온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최근에 특히 높아진 동물 부검에 대한 관심을 실감하고 있었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검역본부가 집계한 ‘수의법의검사(부검) 연도별 의뢰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19건에 불과한 부검 의뢰는 지난해 453마리까지 늘었다. 한 해 업무일을 220일로 볼 때 하루에 두 마리꼴로 동물 부검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사체를 부검하는 시간은 1~2시간이지만 의심 소견을 찾아내고, 검사를 진행해 최종 의견을 작성하는 시간은 더 많이 걸린다. 그만큼 하루에 두 번씩 실시되는 부검은 강도 높은 업무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검 의뢰를 최대한 받아들이는 데에는 기관 차원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이 연구관은 말했다.

원래 저희는 가축 전염병을 주 업무로 했던 부서예요. 아무래도 과거 본부장님 관심사도 그쪽에 많이 몰려 있었죠. 그런데 최근 들어 동물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러면서 저희 과장님도 ‘이건(동물 부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저희를 독려했죠.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물론 의지만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리진 않는다. 무엇보다 사인 자체를 밝힐 수 없는 의뢰가 들어올 때가 가장 안타깝다. 이 연구관은 “구더기로 전부 뒤덮인 사체를 받은 적도 있다”며 “그 정도로 부패가 진행되면 사인은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구더기조차도 그냥 넘길 순 없다고 한다. 바로 구더기를 통해 사체가 언제부터 부패하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만큼 사체 보존은 동물 부검을 실시하는 데 가장 필요한 부분이지만, 실제로 일선 수사현장에서 잘 이뤄지진 않았다. 이런 조건이 동물 부검을 더욱 열악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 연구관은 “경찰과 소통하며 사체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경찰도 곧 예산을 들여서 각 지방 경찰청마다 냉장고를 마련할 예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전히 일부에서는 동물 부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검역본부에 부검을 맡기면 사체를 돌려받지 못하고 소각된다는 점을 불편하게 여기는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안타까운 마음에는 공감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검역본부는 전염병 예방 목적의 기관이라, 한번 들어온 사체를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또한 동물은 사람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일부 사건은 부검을 마치고 난 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동물들과, 그 동물을 아끼며 의뢰하신 분들껜 미안하지만 더 정확한 결과를 내는 걸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검역본부장 “센터 승격 목표.. 수의법의학 인재 양성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동물의 사인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조건은 또 있다. 바로 정확한 검사다. 외상은 부검으로 밝힐 수 있지만, 최근에는 독극물을 이용한 학대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 연구관은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은 보호자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에게 약을 먹였다가 고양이가 피를 토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범인은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어서 자신이 먹는 약을 고양이들에게 먹인 뒤 의식을 잃은 고양이를 생매장했다.

독극물 외에도 바이러스에 의한 집단 폐사는 사람의 건강과도 관련된 일이기에 원헬스(One Health · 사람과 동물, 생태계 분야 연구의 연계를 통해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는 접근법) 관점에서도 꼭 필요하다.

검역본부 동물병원에도 약독물검사실과 바이러스 검사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최신 검사 장비가 구비돼 있어 언제든 샘플만 확보되면 바로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이 연구관은 “최근 해외 수의과대학 등 수의법의학 전문기관과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그곳 관계자들도 우리가 곧바로 장비를 이용해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걸 놀라워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원하는 만큼 빠르게 검사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질병진단과 직원들은 ‘공간’을 꼽았다. 다양한 검사 장비를 여럿 구비할수록 빠른 검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문제는 거대한 장비가 한정된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김정희 검역본부장도 동그람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점을 언급했다. 김 본부장은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수의법의학 검사를 검역본부에서 실시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정도로 사회의 인식이 발전했다”며 “질병진단과의 기능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수의법의학 센터'(가칭)로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이 커진다는 건 그 역할도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김 본부장은 그 역할 중 하나로 ‘인재 양성’을 꼽았다. 그는 “수의법의학 센터가 해당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 전문가가 센터에 근무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며 “그 시작점으로 동물 보건 교육 실습센터를 검역본부 내에 두기 위해 예산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검역본부 차원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동물 과학수사’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 분야에 뛰어들 사람들이 늘어야 한다. 이 연구관은 그 미래를 그리며 오늘의 고된 업무를 감내한다고 말했다.

저희들도 업무가 힘들 때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작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힘들다'고요. 그 대신 이 분야를 개척하고, 한국이 동물복지 선진국으로 가는 데 일조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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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취재협조 : 농림축산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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