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컵 이제 돈 주고 사라? "환경부, 무상제공 금지 검토"

입력
2024.10.08 20:10
강득구 민주당 의원, 환경부 내부 문건 공개
'지자체 자율로' 보증금제 사실상 폐기
일회용 컵 유상 판매를 대안으로 검토
학계 등 '우군화 가능 그룹' 거론하면서
여론전 준비한 흔적도 "여론 조성 공작"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는 대신, 일회용 컵을 카페 등에서 유상판매만 할 수 있게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학계·언론 등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적극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이 등장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 내부 문건이라면서 공개한 '일회용컵 보증제 대안' 문서에 따르면, 환경부는 '소비자의 선택과 책임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일회용 컵 무상제공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상 판매 금액은 정부가 일정 수준을 권고하거나 매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며, 판매 수익은 일회용 컵 배출·회수 비용으로 쓰거나 텀블러 이용 고객에게 주게끔 한다는 게 환경부 복안이다.

환경부는 해당 문건에서 '비닐봉투 등 기존 무상제공 금지 시행 사례를 참고 시, 제도 초기 소비자 반발이 예상되지만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환경정책 후퇴 비판도 상쇄 가능'이라는 문구도 문건에 담겼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후퇴에 대한 비판을 '무상제공 금지'라는 대안을 통해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보증금제는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판매할 때 300원 자원순환보증금을 포함해 돈을 받은 뒤, 소비자가 컵을 반환할 때 다시 돌려주는 제도다. 당초 정부는 2025년까지 이 제도를 전국에서 의무시행할 계획이었으나 지난해 9월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사실상 철회 의사를 밝혔다.

현재 보증금제는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범운영 중이다. 매장 참여율은 한때 제주 94.6%, 세종 64.9%에 달했으나, 현재 44.8%와 31.3%로 떨어졌다. 컵 반환율도 제주와 세종에서 각각 78.3%와 48.1%까지 올랐다가, 현재 54.2%와 48.1%로 고꾸라진 상황이다. 제주와 세종에서 지금껏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을 위해 정부가 투입한 예산은 230억 원 정도다.

강 의원은 "(문건을 보면)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전국 시행을 하지 않고 지자체나 민간의 판단에 맡긴다(고 나와 있다)"며 "환경부는 내부적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추진 중단을 결정한 것이고, 대신 일회용 컵을 원하는 손님에게는 비용을 더 받고 팔겠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특히 해당 문건에는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적극 활용"해 "대안 검토 과정 객관화"와 "여론환기 유도"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강 의원은 밝혔다. 문건은 '우군화 그룹'의 예로 학계, 소상공인업계, 시민사회, 언론 등을 거론했다. 학계의 경우 "대안 마련은 우리 부(환경부)가 주도, 결과는 학계·전문가 그룹을 활용하여 공개(10월 말 토론회)"해 여론전을 벌이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강 의원이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적극 활용한다는 (문건) 내용 중 우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자,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당황하면서 이병화 차관 쪽을 향해 "저게(문건) 어디서 나온 건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해당 문건에 대해 "문서를 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환경부가 학계·업계·환경단체·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려는 '공작'을 준비했다"며 "보증금제가 정부가 지원해 일회용 컵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방안이라면, 무상제공 금지는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