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숙인 삼성전자, 위기를 기회로 바꿀 혁신 보여줘야

입력
2024.10.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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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경영진이 어제 실적 부진에 송구하다며 초유의 사과를 했다.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사과문에서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걱정을 끼쳐 고객, 투자자, 임직원에게 송구하다"며 "위기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앞장서 꼭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날 공개된 삼성전자 3분기 매출은 79조 원으로 전 분기보다 6.6%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9조1,000억 원으로 12% 넘게 감소했다. 증권가 예상치를 15%나 밑도는 성적이다. 경쟁기업 미국 마이크론의 '어닝 서프라이즈'와는 정반대다.

반도체 호황에도 홀로 실적이 부진한 것은 밝지 않은 삼성전자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미래 수익원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부문은 선두주자 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면서, 엔비디아 납품지연이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부동의 세계 1위 D램 범용 제품마저 중국 업체에 시장을 빼앗기고 있다. 또 세계 1위를 목표로 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도 좀처럼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는데 어닝쇼크가 현실화할 때까지 뚜렷한 대책도 개선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전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실적 회복을 위한 단기적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기술경쟁력을 되살리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겠다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의 대대적 쇄신을 다짐했다. 일본을 추월하며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했던 1990년대 삼성전자의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는 것이다.

승자의 안일함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던 삼성전자가 기술력 위기를 솔직히 인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고강도의 구체적 대책이 신속하게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대외 환경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점점 높아지는 무역장벽과 함께 미국 일본 중국 등은 자국 기업에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위기는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산업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 노력과 함께 이를 지원하는 산업정책 정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