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배달 알바라더니 웬 돈다발? 알바생 자수 덕 보이스피싱 '윗선' 검거

입력
2024.10.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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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백 속 돈다발... 수상한 낌새에 신고
경찰, 접선장소 잠복해 '2차 수거책' 검거

단순한 서류 배달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시작한 일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었음을 뒤늦게 눈치챈 20대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이 아르바이트생의 협조를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 윗선까지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관악경찰서는 4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A씨는 시중은행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2차 현금 수거책인데, 피해자 박모(53)씨로부터 5,000만 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A씨가 검거된 경위는 이렇다. 피해자 박씨는 지난달 23일 자신을 모 은행 직원이라고 소개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대출 업무를 담당한다는 이 직원은 "현재보다 더 낮은 이율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다"며 박씨를 설득했다. 박씨는 마침 집을 마련하느라 빌린 돈의 이자율이 높은 것 같아 고민하던 참. 통화 다음 날 박씨는 직원이 문자로 보내준 인터넷 홈페이지(URL)에 접속해 대출 신청을 완료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박씨가 기존에 대출을 받았던 은행의 대출 담당자라는 남성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 남성은 "중도에 대출을 갈아타는 건 불법"이라면서 "굳이 해야 한다면 인터넷 뱅킹이 아닌 현금 거래로 도와드릴 수 있다"고 유도했다. 박씨에게 전화를 건 두 사람은 모두 은행 직원을 가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한패였다. 이를 몰랐던 박씨는 안내에 따라 지난달 25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 공터에서 20대 청년 B씨를 만나 2,000만 원을 건넸다. 세 시간 뒤 광명역에서 다시 만나 잔금(3,000만 원)도 치렀다.

이틀 만에 5,000만 원을 빼앗은 범행에 제동을 건 이는 눈치 빠른 아르바이트생 B씨였다. 단순히 서류를 전달하는 일로 알고 나온 B씨는 2차 거래 당시 피해자 박씨가 건넨 쇼핑백을 보고 '범죄에 연루된 것 같다'는 걸 직감으로 느꼈다고 한다. 첫 거래 때는 박씨가 서류 봉투에 돈을 담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2차 거래 때 쇼핑백 속 돈다발을 본 뒤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바로 관악경찰서에 자수하며 쇼핑백 속 3,000만 원도 경찰에 돌려줬다.

경찰은 B씨의 협조로 A씨까지 검거했다. 경찰은 두 사람의 접선 장소에 미리 잠복한 뒤, 그를 현장에서 긴급체포해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1차 현금 수거책인 B씨와 배후 조직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최현빈 기자
허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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