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갑니다. 끝날 듯싶지 않던 여름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 길가에 가로수는 빛깔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괴팍한 날씨 변화를 견뎌내는 식물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는 겉옷 하나 챙겨 입고 벗으면 되지만, 말 없이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식물들이 아파 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듭니다.
그래도 산과 들은 물론 가을 정원도 가을색이 들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요즘 인기 높은 그래스 가든(Grass Garden)이 멋진 풍취를 자랑합니다. 그래스의 사전적 의미는 풀, 잡초 혹은 잔디지만, 정원에서의 그래스는 주로 벼과 혹은 사초과 식물들입니다. 정원마다 한창인 수크령을 비롯해 대표적인 밭잡초 털새, 기름새 등등의 새류, 옛 어른들은 씨앗을 담은 솜털 가득한 열매뭉치를 껌처럼 씹으셨다는 띠···.
재미난 것은 우리의 귀한 식량 자원인 벼, 보리, 밀, 정원마다 심는 잔디도 모두 벼과식물이지만 그동안 이들 때문에 논밭과 잔디 마당에서 잡초로 취급됐던 이들이 이제 정원의 주인공으로 대접받고 있는 겁니다. 식물은 격세지감을 느낄만 합니다.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두 해 전부터 '정원식물 품평회'라는 것을 1년에 두 번 엽니다. 수입 식물 대신 이 땅에 자라는 자생식물이나 꼭 자생식물이 아니어도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새로운 정원식물들을 대상으로 전문가와 국민품평단이 함께 '올해의 정원식물 10가지'를 선정하는 행사입니다. 이 대회에는 흔히 잡초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여러 빛깔을 나타내는 다양한 변이의 새로운 품종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붉은줄무늬를 가진 큰기름새, 희고 노란 무늬를 가진 밀사초 등도 있습니다. 특히 잡초 털새 ‘오케이 골드라인’을 비롯한 9개의 품종은 6개 나라에 수출까지 성사됐습니다. 더 이상 잡초가 아닌 셈입니다.
농사를 짓거나 정원을 가꾸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잡초, 하지만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기에 싸잡아 하찮고 불필요한 존재로 무시하던 식물 속에도 이렇게 보석 같은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잘 골라내어 적절하게 활용하면 더없이 귀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 세상도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되네요. 세상 잣대로 구분되고 나의 안목이 부족해 잡초처럼 취급됐던 일이나 시간, 사람은 없었나 돌아봅니다. 인생의 가을쯤에 와 있을 삶의 정원에 진정 소중한 나만의 잡초를 찾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