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배신"한 이스라엘 국제 평화운동가

입력
2024.10.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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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모르데하이 바누누(Mordechai Vanunu)

1986년 10월 5일 자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이스라엘 핵무기의 비밀’이란 제목의 기사를 1면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69년 유엔 핵확산금지조약을 외면하며 핵 개발 의혹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던 이스라엘이 “네게브 사막 지하 비밀 공장에서 지난 20년 동안 핵탄두를 생산해왔다”는 사실을 그 공장에서 약 10년간 일한 당시 만 31세의 이스라엘인 핵 기술자 모르데하이 바누누(Mordechai Vanunu, 1954.10.14~ )의 인터뷰와 증거 사진으로 폭로한 기사였다. 이스라엘이 세계 6번째 핵 보유국이자 연간 40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해내는 핵 강국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드러났다.

모로코의 유대교 정통파 가문에서 태어나 10세 무렵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에 정착한 그는 이스라엘 방위군 복무를 마친 뒤 76년 네게브 핵연구센터에 취업했다. 좋은 연봉과 처우 덕에 유럽과 북미 등지를 자주 여행했고, 그 과정에서 납치 등 신변 안전을 위한 직장의 여행 보안규정을 어기곤 했다. 평소 시오니즘의 공세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아랍 국가들과의 평화 공존을 옹호하던 그는 사전에 핵 시설 사진 등을 몰래 촬영했다가 벤구리온대를 졸업(철학, 지리학 전공)하던 85년 직장에 사표를 냈고, 이듬해 영국에서 기자에게 모든 사실을 제보했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은 영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미국인 여행객으로 위장한 미모의 여성요원을 접근시켜 그를 이탈리아로 유인한 뒤 체포해 본국으로 송환했다. 그는 간첩-반역 혐의로 기소돼 18년형을 선고받았고 복역기간 중 11년을 독방에 감금됐다. 2004년 출소 인터뷰에서 그는 “이스라엘 보안국은 나를 무너뜨리는데도, 미치게 만드는데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출소 후에도 해외여행 및 외국인 접촉 금지 등 가석방 규정 위반 혐의로 최소 두 차례 3~6개월 구금됐고, 지금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감옥에 갇힌 채 종신 수형자로 살고 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