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나가!"
지난 3일 저녁 서울 잠실야구장 바깥에서는 '국민 타자' 이승엽을 향한 거센 불만을 표출하는 두산베어스 팬들의 성토대회가 열렸다. 이날 잠실구장에서는 올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이 열렸다. 경기 결과 이승엽이 감독으로 있는 두산은 상대팀 KT 위즈에 0 대 1로 졌다. 두산이 전날 1차전에 이어 2연패를 기록하면서 포스트시즌의 다음 라운드인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한 두산은 2선승제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포스트시즌 규칙상 4위 팀엔 1승이 기본으로 주어져 한 번만 이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5위 팀 KT에 내리 패배하면서 가을야구를 조기 마감했다.
특히 2015년 와일드카드 경기 제도가 생긴 이래 5위 팀이 4위 팀을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업셋)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두산 입장에선 프로야구 최초의 불명예 기록을 쓴 셈이다. 게다가 두산은 전날에 이어 18이닝 연속 무득점하는 등 경기력 면에서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두산은 지난해엔 5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해, 역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두산 팬들이 감독인 이승엽의 이름을 연호하며 사퇴를 요구한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었다. 실망감이 극에 달한 일부 팬들은 구장 밖에서 삼성라이온즈의 응원가 '엘도라도'를 부르기도 했다. 삼성은 이승엽이 현역 시절 몸담았던 팀으로, 선수 시절에 비해 감독으로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조롱의 의미였다. 특히 올해 시즌에서 두산이 삼성을 상대로 4승 12패의 절대열세의 성적을 거둔 전적도 두산 팬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경기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4일 MLB파크 등 온라인 야구 커뮤니티에는 "감독직을 내려놓으라"는 팬들 불만이 쏟아졌다. 이들은 평소 이승엽의 팀 운영 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게 이승엽이 두산 야구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두산 팬은 "팀 컬러인 공격야구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사라졌다"며 "초반부터 리드당하면 경기 내내 끌려다니다 지는 무기력한 팀이 됐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승엽은 2년 전 두산 감독직을 수락하며 팀 색깔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제가 홈런을 많이 친 타자지만 열심히 뛰고 부지런한 선수를 선호한다. '스몰볼'을 추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스몰볼'이란 단타와 번트 등을 통해 한 점씩 점수를 쌓아 승리를 도모하는 전략을 말한다. 시원한 장타를 통해 '한 방' 야구를 구사하는 '빅볼' 전략의 반대 개념인데, 두산은 그간 빅볼 스타일을 추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승엽이 나이 어린 투수들을 혹사했다는 논란도 다시 점화됐다. 특히 불펜 선수들이 한 경기에 지나치게 자주 교체 투입돼 왔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투마카세'라는 신조어가 회자됐다. 고급 일식당에서 '오마카세' 요리가 순서대로 연이어 나오듯, 한 경기에 투수들이 연달아 등판하며 체력을 소진한 것을 비꼰 것이다.
그러나 팀 패배를 오롯이 감독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한 두산 팬은 "타자들이 두 경기 동안 한 점도 못 내고 졌는데, 이게 감독만의 탓인가"라고 반문했다. 다른 팬도 "팀 전력이 상위권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게 사실인데 4위까지 올려놨으면 명장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승엽은 3일 경기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우울하고 마음이 아프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팬들에겐 "매우 죄송스럽다"며 "제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선수들은 열심히 준비했다"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