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일주일 만에 숨 멈춘 쌍둥이...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의 고통의 증언

입력
2024.10.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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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가와타 후미코 '할머니의 노래-식민지 시대 재일 여성들의 삶과 증언'


재일한국인 박모(92) 할머니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됐다. 눈이 멀 정도로 빛이 작렬한 뒤 그가 탄 전차 안으로 불덩어리가 들이닥쳤다. 6년 뒤 쌍둥이를 낳았지만, 생후 일주일 만에 모두 숨을 멈췄다. 재일한국인들은 원폭 피해 사실과 후유증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조사위원회에서 피검사를 했지만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 '할머니의 노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역경을 지고 살아온 재일 1세대 한국인 여성 29명의 굴곡진 이야기다.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자인 고 배봉기 할머니의 삶을 다룬 책 '빨간 기와집'(1987)을 낸 일본인 가와타 후미코가 썼다. 책은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의 기억과 역사적 사건 그리고 현재를 그물망처럼 엮어 이들이 당한 오래된 핍박을 고발한다. 박모(99)할머니는 한센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일본 국립한센병 요양소 입소자는 2011년 기준 2,276명으로 102명이 재일한국인(4.48%)이다. 일본 총인구에서 한국 국적 외국인 등록자 비율(0.34%)보다 10배 이상 많다. 재일한국인 발병률이 높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열악하게 살았다는 방증이다.

겹겹의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의 역사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다. 위안부 피해자인 고 송신도 할머니는 199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사죄와 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된 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진 재판 괜찮아, 나는 녹슬지 않으니. 여기 모인 분들 잘 들어요. 두 번 다시 전쟁은 하지 말아 주세요~" 책 제목이기도 한 '할머니의 노래'는 한일을 넘어 러시아, 중동 전쟁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세계를 향한 충고로도 유효하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