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아파트 찬가

입력
2024.10.03 04:30
22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8년 전 사건 기자로 서울 마포경찰서를 출입할 때의 일이다. 가까운 취재원으로부터 "경찰서 뒤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아파트 단지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단지 사이의 공용도로로 지하철 2호선 아현역에 접근하는 마을버스가 다시 통행할 예정이었는데, 아파트 입주민들이 마을버스 노선 복구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마을버스는 지역의 교통 편의를 향상시켜주는 인프라다. 게다가 마을버스가 통행할 도로는 단지 소유도 아닌 엄연한 공용도로였다. 입주민들은 왜 반대할까. 직접 집회를 찾아 입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 "우리 아파트는 '청정 아파트'를 표방하는데, 마을버스가 지나다니면 공해와 소음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좁다란 주변 골목길에 빨간 펜으로 버스 노선의 우회로를 그린 지도를 보여주면서 "이리로 다니면 된다"고 주장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럼 그 골목길 주변 주민들은 공해와 소음을 겪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 버스로 2호선 아현역을 다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는 기자의 질문에 "5호선 애오개역을 이용하면 된다"는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 권익을 주장하면서 남 사정은 철저하게 뒷전인 데다, 지역 편익에 이바지하는 마을버스마저 이렇게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씁쓸했다.

당시 취재 일화가 떠오른 건 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군 '아파트 찬가'를 접하면서였다. 국민평형(전용 84㎡) 아파트 가격이 40억 원을 웃돈다는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를 찬양하는 시가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이 시에서 해당 아파트는 임금과 그 가족이 사는 '궁궐'에 빗대어졌고, 주민들은 '해 같은 인재들과 별 같은 선남선녀'라며 우주의 천체로 묘사됐다. 또 시 속에서 주민들은 '겨레의 심장'으로 칭송되며, 우리 민족의 대표성까지 획득했다. 이 정도면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을 찬사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 같은 논란을 어떻게 여기나 궁금해졌다. 주민들이 주로 글을 게시하는 부동산 플랫폼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들이다. "시기와 열등감에 찌들었다. 그러니 부자가 못 되지",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누르려는 것 아니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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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2509220002097)

자신의 주거지를 향한 낯 뜨거운 찬양이 그저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부동산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서울 중심부의 초고가 아파트는 삶의 터전을 넘어선 자산 증식의 수단이다. 거액을 투자한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막는 일은 소유주에게 용납되지 않으며, 집값이 올라갈 수만 있다면 이웃을 향한 배타성을 드러내는 데도 거침이 없다. 특수학교나 임대주택 건설 반대, 주민들끼리의 집값 담합, 다른 이웃들을 아무렇지 않게 'OO거지'로 부르는 차별적 행태는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친다'는 말이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가 되는 요지경 세상이다. 내 아파트를 향한 찬사를 비추는 거울 속에 이웃을 향한 배척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