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 2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한은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인 이날 회동에서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의 수장은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성장률 감소 등 한국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공조 의지를 다졌다. 기준금리 인하에 관해선 말을 아꼈다.
최 부총리와 이 총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경제 고르디우스의 매듭: 지속가능 경제를 위한 구조개혁'을 주제로 양측 직원 등 150여 명과 80분간 비공개 타운 홀 미팅(열린 회의)을 가졌다. 이날 회의는 최 부총리와 이 총재가 2월 '확대 거시정책협의회'에서 시작한 구조개혁에 관한 정책 대화의 연장선이다.
회의에서 최 부총리는 성장 동력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타이태닉호에 비유하며 암초를 발견하면 이미 늦었듯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인구 위기 등 구조적 문제는 미리 준비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결국 생산성 향상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보기술(IT)과 수출강국인 우리나라가 서비스 산업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노동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혁신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전환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장기적으로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자리 대체, 금융시장 리스크 확대 등 문제점도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또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분산된 지역 투자로는 투자 효율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며 "비수도권 거점도시 중심으로 균형발전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두 수장은 이날 회의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 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현재 경제 상황에서 거시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두 기관의 교류와 공조가 필요하다"며 "(이번 교류는) 시대적 변화 요구에 대한 적응이라고 생각하고, 독립성이 강한 외국 중앙은행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은의 독립성 훼손 시비를 우려해 정부 인사와 공개적 접촉을 꺼려 온 과거 총재들과 다른 행보를 의식한 발언이다.
최 부총리는 "한은이 구조적 이슈를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저는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한은의 우수 인재가 우리 사회문제의 해법을 같이 고민하는 것은 한은 입장에서 당연한 책무"라고 했다.
다만 다음 달 11일 기준금리 인하 여부에 대해선 두 수장 모두 답변을 피했다. 최 부총리는 "(한은의) 고유 영역"이라고만 했고, 이 총재는 "오늘은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