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4년 전 설치됐지만 철거 위기에 처한 평화의 소녀상(소녀상) 존치를 위해 독일 연방하원의 울리케 바흐(사회민주당) 가족노인여성청소년위원장(가족위원장)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나선 것으로 29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슈테파니 렘링거(녹색당 소속) 미테구청장 앞으로 '소녀상 존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다. 2020년 9월 28일 설립된 소녀상의 철거를 위해 일본이 독일에 여러 경로로 압력을 가해 온 점을 고려하면, 현직 의원의 '소녀상 구하기'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소녀상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소녀상을 공공 부지인 현 위치에 더는 둘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한 미테구청과, 소녀상을 설치한 시민단체인 독일코리아협의회(코협)가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소녀상 설치 기한이 28일 종료됐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익명 소식통에 따르면, 바흐 가족위원장 명의로 작성된 서한은 소녀상 설치 기한 종료를 앞두고 렘링거 미테구청장에게 전달됐다. 서한에서 바흐 위원장은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기리지만,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며 "과거의 범죄를 기억하고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를 환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상을 '일본에 대한 한국의 공세' '한일 관계 악화의 촉매제' 등으로 묘사해 온 일본 입장을 우회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흐 위원장은 "소녀상 설치 기한을 연장하거나 영구 설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분명히 요구하기도 했다. 카이 베그너(기독민주당 소속) 베를린시장에게도 같은 내용의 서한이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바흐 위원장이 소녀상 존치를 위해 적극 나선 데에는 지난 4~7일 베를린을 찾았던 한국 야당 국회의원단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의원단 대표였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바흐 위원장 면담에서 '어떤 조형물이든 공모 등 법적 절차 없이 공유지에 세울 수는 없다'는 렘링거 구청장 발언을 거론한 뒤, "법적·행정적 측면을 고려해야겠지만, 소녀상 가치를 생각할 때 정치적 해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존치에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소녀상 모형을 면담에 들고 가서 그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의 이 같은 지원에도 소녀상이 처한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는 모습이다. 렘링거 구청장은 철거 시한 나흘 전인 지난 24일 '소녀상의 사유지 이전' 방안을 두고 코협과 협의를 벌였지만, 이후 "코협이 어떠한 타협의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4주 내 철거'를 명시한 명령장을 발송했다. 이에 코협은 "사유지가 아닌 관내 공유지에서 대체 장소를 골라 다음 달 10일까지 제시하라"고 맞서고 있다.
코협은 특히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녀상 철거 작업이 시작되면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소녀상 설치 4주년이자 설치 기한 종료일인 28일, 코협은 소녀상의 '생일 잔치'를 겸한 집회를 열어 존치를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