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사태의 유탄을 맞은 병원 노동자들이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사 업무 전가'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공공의대 설립과 공공병원 확충이 지역·필수의료 공백과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대정부 교섭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2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과 수가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지만 의대 증원으로 배출된 의사들을 지역·공공·필수의료에 배치하고 지원할 계획,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계획은 지금까지 단 한 줄도 만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사,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병원 내 보건의료 노동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올해 들어 7월까지 일반의가 개원한 의원 129곳 중 80% 이상이 피부과이고, 30%가 서울에 위치하는데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한들 무슨 수로 지역·필수의료로 보낼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립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공공의사 양성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병상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병원·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주장했다.
이들은 전공의 사직 사태로 촉발된 병원들의 경영 적자와 의사 업무 전가도 지적했다. 박나래 서울대병원 분회 사무장은 "의사 600여 명의 사직으로 인한 손실을 직원들의 무급휴가로 메꾸려고 한다"면서 "사직한 사람 자리에 인력을 넣는 게 아니라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굶으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찬진 강원대병원 분회 조직부장은 "의사 집단 행동으로 진료 계획이 어그러지고 수술 일정이 취소되면서 병상 가동률이 떨어졌다"며 "간호사들은 '정부 시범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병원을 떠난 의사들의 업무까지 떠맡게 됐고, 교대근무조 인원이 줄어 부담은 더욱 커졌다"고 호소했다. 이어 강원대병원 역시 직원들이 병가·연차·무급휴가 사용을 강요받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 개선을 바라며 보건복지부와 국립대병원 담당인 교육부에 면담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라며 "대화에 응하지 않고 불통 행정을 이어가면 조정이 종료되는 다음 달 17일 투쟁대회를 시작으로 최고 수위의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교섭을 진행 중인 의료연대본부 산하 16개 분회는 이날 조정신청에 돌입해 파업권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