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전기차 화재 막을 수 있을까… 완도서 합동훈련 했더니

입력
2024.09.27 20:00
서해해경, 전기차 화재 훈련 실시
2만톤급 선박서 화재 상황 가정
공간 제약, 5분 내 초기 대응이 중요

"4층 선미에서 전기차 화재 발생! 전 승객들 구명조끼 착용 후 신속히 대피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객선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는 방송이 나오자, 선원들이 "불이야"를 여러 차례 외치고, 비상벨을 작동시켰다. 승객들은 갑판 위로 올라가, 화재 발생지와 가장 먼 반대편 선미로 대피해 구조선을 기다렸다.

이어 바닷물을 끌어 쓰도록 연결된 소방 호스를 선원들이 속속 설치했다. 상황 전파부터 진화 준비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분. 한데 이후가 문제였다. 선원 10여 명이 호스에 달라붙어 세찬 물을 전기차에 뿌리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특수 장비가 동원됐다. 육상에서처럼 선원들은 질식소화 덮개를 씌워 유독가스의 배출을 막은 뒤 차량 하부에 물을 뿌려 배터리의 열기를 냉각시켜 불을 껐다.

27일 전남 완도군 완도항에서 선상 전기차 화재를 가정한 국내 최대 규모 화재 대응 훈련이 실시됐다. 인천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바다 위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 발생 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와 민관군 합동으로 마련됐다. 이날 훈련에서는 승객과 선원 429명이 탈 수 있는 2만 톤급 여객선인 '실버클라우드호'에 전기차에서 불이 난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다만 실제 전기차에 인위적으로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훈련에서 가장 중점을 뒀던 건 초기 진화였다. 배라는 제한된 공간에 마땅히 대피할 곳이 없어 가급적 빨리 불이 번지는 걸 막아야 해서다. 훈련 상황을 감독한 김경호 완도소방서 대응구조 과장은 "전기차 화재 진압은 초기 진압이 생명"이라며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배터리 열폭주로 인해 빠르게 대형 화재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육상처럼 질식소화 덮개 필요하나 일반 여객선 대부분은 없어

그러나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진화가 쉽지 않다. 배에서도 질식소화 덮개가 필요한 이유다. 김 과장은 "화재 시 85도가 넘으면 차량의 유리가 깨지는데 질식소화 덮개를 덮고 냉각수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면 내부로 물이 유입돼 배터리를 냉각시킬 수 있다"며 "이 상태로 가까운 피항지로 대피해 육상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이날 훈련과 달리 대부분의 여객선은 전기차 화재 진압용 특수장비가 없다. 특수장비는 설치 의무가 없는 데다, 매우 고가여서 여객선사들이 도입을 꺼려서다. 실버클라우드호 소유 여객선사인 한일고속 관계자는 "질식소화 덮개 등 특수 장비 4세트를 구매하는 데 7,200만 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선원들이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는 동안 해경이 도착해 승객들을 구조하는 훈련도 이뤄졌다. 해경이 구명벌(천막처럼 펴지는 둥근 형태의 무동력 구명보트) 여러 개를 선박 가까이에 떨어뜨리자, 승객들은 선박에서 내려온 밧줄을 타고 이동했다. 겁에 질린 승객들이 서로 먼저 구명벌에 타겠다고 밀치다 바다에 빠진 상황이 연출됐을 때는, 대기 중인 서해경찰청 323함 대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했다. 부상이 심각한 승객들은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훈련에 참여한 석승재 실버클라우드호 선장은 "승객들이 안심하고 선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체 훈련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옥한 서해해양경찰청 구조안전과장은 "바다 위 전기차 화재도 진압이 어려워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전기차 화재 대응 매뉴얼을 보강해 대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완도=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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