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미국과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냉전에서 비롯한 산물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인터넷의 개념을 발명한 과학자가 음향심리학 전공자인 심리학자라는 것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다. 소련의 핵미사일에 안보 위기를 느낀 미국이 1960년대 군사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며 개발하기 시작한 군사용 네트워크 아르파넷(ARPANET)이 인터넷의 모태다.
책 ‘다르파 웨이’는 전쟁, 무기, 정부 비밀, 국가 안보 전문 작가인 애니 제이콥슨이 미국 국방부 펜타곤의 브레인인 다르파(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역사를 다룬다. 1958년 설립된 다르파의 비밀스러운 역사와 최첨단 과학 기술이 미국 정부 지원 아래 군사 목적으로 활용된 역사를 소개한다. 군사 분야 혁신은 곧 일상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인터넷뿐 아니라 GPS, 무인 드론, 음성인식 기술, 자율주행차 등이 다르파의 연구에서 시작했다. 다르파가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드는 기관'이라 불리는 이유다.
책의 출발점은 인류에 종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악한 물건’인 수소폭탄이다. 소련의 원자폭탄에 맞서 미국이 만든 핵무기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자문위원회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개발이 강행됐고, 이는 다르파 설립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냉전시대에서 시작해 베트남전과 걸프전, 9·11 테러를 지나 현대의 드론 전쟁까지 다르파가 걸어온 비밀스럽고 도전적인 여정을 꼼꼼히 추적한다.
다르파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세상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이지만, 혁신이 대규모 살상을 야기하는 전쟁 무기 개발로 이어질 때 과학자들은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곤 한다. 저자가 다르파의 역사를 짚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고민이기도 하다. 책은 다르파의 기술이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분석하며 과학기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꼼꼼한 조사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저작이지만, 설명이 장황한 대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