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임직원들이 24일 경영권 분쟁 후 첫 기자회견에 나서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MBK)의 주식 공개매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영풍과 MBK 측은 고려아연 구성원을 달래고 여론에 정당성을 호소했다.
이날 오전 고려아연 이제중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에서 회사 기술 직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MBK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부당하다는 점을 국민께 알리고자 한다"며 "피와 땀으로 일궈온 고려아연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1984년 고려아연에 기술직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부회장에 오른 인물로 40년 넘게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장형진 영풍 고문을 지목하며 4, 5년 전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 폐기물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동업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장형진 고문은 폐기물 문제 해결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통해 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남의 공장 폐기물을 받아서 처리하는 것은 배임이고 범죄행위여서 할 수 없었다"며 "이걸 막은 게 바로 최윤범 회장이었고 그 뒤로 장 고문과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영풍과 MBK 측에 넘어갈 경우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빠르게 약해져 핵심 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투자 회사들이 돈만 놓고 보면 고려아연에서 팔아먹을 기술이 엄청 많을 것"이라며 "공정마다 수백 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 어떤 것은 몇천억 원짜리도 있다 보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회장과 참석자들은 끝으로 "약탈적 투기 자본과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다"며 "우리와 함께 고려아연을 지켜달라"며 국민과 주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반면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 구성원과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MBK는 이날 '고려아연 임직원, 노동조합, 고객사, 협력업체, 주주, 지역사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께 올리는 글'이라는 긴 제목의 입장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MBK는 "일각에서는 우리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신성장 사업들이 모두 중단될 것같이 호도하고 이익에만 집중해 제품 품질을 저하할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며 "협력 업체들과의 관계도 중단될 것으로 넘겨짚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핵심 기술이 유출되고 심지어 인수 후에는 중국에 매각될 것같이 말하고 있다"며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며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MBK는 또 "고려아연의 1대 주주와의 협력하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본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대 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회사 측은 "고려아연은 국가기간산업"이라면서 "우리는 장기간 투자하고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자 활동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영풍은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형진 고문이 직접 나서 공개매수 배경을 설명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장 고문은 23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이 기업공개(IPO)는 기업공개대로 해놓고 지분은 한 15∼20% 가진 채 자기 개인 회사처럼 운영을 한다"며 "고려아연은 주인이 어떻게 바뀌든지 영원히 잘 가길 바라고 또 바란다"고 말했다.
최 회장과 갈등이 커진 계기에 대해서는 최 회장이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며 자기 세력을 넓히는 동안 장 고문 본인의 반대 의견은 듣지 않았다며 "그 얘긴 결국 '나 당신하고 안 하겠다'는 말"이라고 말하며 최 회장 측으로 화살을 돌렸다.
장 고문은 또 공개매수에 성공해도 "(고려아연의)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며 MBK가 최 회장이 추진하던 사업을 그대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풍도 잇따라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영풍은 이날 고려아연 측이 주장한 환경 폐기물 처리 갈등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영풍은 "과거 영풍과 고려아연이 사용했던 자로사이트라는 아연 제련 공법을 현재는 양사 모두 변경해 더는 자로사이트 케이크(폐기물)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몇 년 전 고려아연과 자로사이트 케이크 처리 방안에 대해 협의한 적은 있으나 최종적으로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환경 폐기물인 카드뮴 케이크도 현재는 다른 외부 업체에 판매하고 있어 영풍이 폐기물 처리를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전날(23일)에도 입장문을 통해 "(공개매수는) 최윤범 회장의 전횡을 막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 팔을 자르고 살을 내어주는 심정으로 MBK에 1대 주주 지위를 양보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