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한 지 반년 이상 지났지만 돌아올 기미가 없어 대학들의 손이 묶였다. 교육부가 지난 7월 유급 면책 등의 내용을 담은 학사 탄력 운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의대생 달래기'에 나섰지만 2학기가 시작된 이달 2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 등록률은 3%대에 머물렀다. 미진한 복귀율에 대학들도 집단 유급을 걱정만 할 뿐 뾰족한 대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23일 한국일보가 접촉한 전국 의대 15곳은 "사실상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진급만 시키라'는 정부 요구에 각종 대책을 꺼냈지만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아 집단 유급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전체 재적 인원 1만9,374명 중 2학기를 등록한 학생은 653명(3.4%)에 그쳤다. 등록 인원이 한 명도 없는 의대도 9곳이나 됐고, 학생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개강이 늦어져 1학기를 채 마치지 못한 학교들도 있다.
일단 대다수 대학은 교육부의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 방침에 따라 추가 등록 기간을 계속 연장하고 있다. 전체 761명 중 24명만 이번 학기 등록을 했다는 전북대 의대는 2차(9월 3~26일)·3차(10월 14, 15일)에 걸쳐 등록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했다. 동시에 지난달 말 학칙 개정을 통해 2학기 중에도 1학기 수업을 병행해 수강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있다. 별도 학칙 개정 없이 휴·복학 등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둔 채 2학기를 시작한 대학도 있지만 정상 수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충남대 관계자는 "이번 학기 예과와 본과를 합쳐 40명 정도가 등록을 했는데, 이마저도 절반은 수업을 듣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몇몇 대학에선 학생 설득에 대학 총장까지 나섰다. 지방의 한 대학 관계자는 "총장이 의과대학이 있는 캠퍼스에 수시로 찾아가 교수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학생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현재로선 교육부의 뾰족한 대책이 없어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세·고려·부산대 측은 대학 본부와 의대 학장들이 의대생들과 비정기적으로 접촉하며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대학들은 2학기가 시작된 이달에도 의대생이 수업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집단 유급이 현실화할 거라 우려한다. 이 경우 장기적으로 의사 배출에 차질이 빚어질 뿐 아니라 당장 3,000명 넘는 현 예과 1학년생에 내년 의대 신입생 4,610명까지 7,000명 넘는 학생들이 함께 강의를 듣는 '수업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 국립대 의대 관계자는 "현재 교육부 정책은 학생들이 돌아온다는 가정 아래 마련된 건데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 대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교육부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는데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먼저 준비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의대 내 교육 인프라 확충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제는 시작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지방의대 관계자는 "당국에서 내년 건물, 교원을 늘려준다고 해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면서도 "증원에 집단 유급까지 겹칠 시 지금의 인프라로는 (정상 수업은) 불가하기 때문에 대안을 서둘러 논의해야 적절한 답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