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됐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탈' 현실로... 2명 행방불명

입력
2024.09.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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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부터 일 시작... 15일 숙소서 2명 사라져
월급 더 받을 수 있는 일자리 찾아 떠난 듯
전문가 "일자리 질 개선하는 게 핵심 돼야"

체불 문제가 불거졌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중 2명이 추석 연휴에 숙소를 나가 현재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범 사업 시작 전부터 전문가들은 "적정 수준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농어촌·제조업 등 다른 일자리를 찾아 인력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23일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간 뒤 복귀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고 있다. 2명 중 1명은 휴대폰을 숙소에 두고 나갔고, 나머지 1명은 휴대폰을 갖고 갔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다. 고용부는 이들이 무단이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주 승인 없이 5영업일 이상 무단결근하는 등 소재 확인이 안 될 경우 '고용변동 신고'(이탈 신고)가 이뤄진다. 2명에 대한 신고는 오는 26일 진행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탈한 2명이 근무했던 가정들 중 일부는 가사관리사를 교체하거나 대기로 전환했고, 서비스 이용 자체를 취소한 가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첫 급여일에 96만 원 교육수당 체불 사태

2명은 '기대했던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시범 사업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는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돼 '최소 약정 근무시간'인 주 30시간을 일하면 월 150여만 원, 주 40시간이면 월 206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 임금으로 월 45만 원 안팎 숙소비와 기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고용한 중개기관 2곳(홈스토리생활·휴브리스)의 유동성 부족으로 첫 급여일인 지난달 20일 교육수당 약 96만 원이 체불됐다가 뒤늦게 지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장 생활비 부족으로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두 번째 급여일인 이달 20일에는 2주 치(8월 20일~9월 2일) 교육수당 106만 원이 지급됐는데, 45만 원 안팎 숙소비와 세금, 4대보험 등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평균 50만 원 수준이다. 중개기관은 이달 근무에 대한 임금은 다음 달 20일에 지급할 예정이다.

이탈한 필리핀 노동자 2명은 제조업, 농어촌 등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업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미등록 상태(불법 체류)를 감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는 일손 부족으로 외국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여 명 중 불법체류자는 42만여 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사적 계약 방식 도입 시 이탈 문제 클 것"

전문가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반응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외국인 무관하게 일자리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인력 이탈이 발생하기에 결국 일자리 질 개선이 핵심"이라면서 "이주 노동을 선택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인데 그때 비교 기준은 본국 임금이 아니라 이주한 국가의 다른 업종(제조업 등)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대체 일자리가 있는 이상 인력 이탈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조 연구위원은 특히 지금처럼 중개기관이 있는 '고용허가제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확대 추진을 검토 중인 '사적 계약 방식'(이용자 가정과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일대일 개별 계약)을 도입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간 업체가 확실히 있는 현 상황에서도 이탈이 발생하는데, 사적 계약 방식이 도입될 경우 이탈 책임을 중개기관이나 지자체가 지기도 힘들어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정통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이주 노동 정책을 펼친 최악의 사례"라며 "이러다가는 '악덕 직업소개소'라는 오명으로 더 이상 한국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인 서울시는 이날 "가사관리사의 조속한 복귀를 위해 본국의 부모님 등 다방면으로 연락 중"이라며 "급여 지급 방식을 '월급제'에서 '주급제'로 개선하는 등 근무 환경 개선을 고용부와 적극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