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 문제가 불거졌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중 2명이 추석 연휴에 숙소를 나가 현재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범 사업 시작 전부터 전문가들은 "적정 수준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농어촌·제조업 등 다른 일자리를 찾아 인력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23일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간 뒤 복귀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고 있다. 2명 중 1명은 휴대폰을 숙소에 두고 나갔고, 나머지 1명은 휴대폰을 갖고 갔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다. 고용부는 이들이 무단이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주 승인 없이 5영업일 이상 무단결근하는 등 소재 확인이 안 될 경우 '고용변동 신고'(이탈 신고)가 이뤄진다. 2명에 대한 신고는 오는 26일 진행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탈한 2명이 근무했던 가정들 중 일부는 가사관리사를 교체하거나 대기로 전환했고, 서비스 이용 자체를 취소한 가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2명은 '기대했던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시범 사업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는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돼 '최소 약정 근무시간'인 주 30시간을 일하면 월 150여만 원, 주 40시간이면 월 206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 임금으로 월 45만 원 안팎 숙소비와 기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고용한 중개기관 2곳(홈스토리생활·휴브리스)의 유동성 부족으로 첫 급여일인 지난달 20일 교육수당 약 96만 원이 체불됐다가 뒤늦게 지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장 생활비 부족으로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두 번째 급여일인 이달 20일에는 2주 치(8월 20일~9월 2일) 교육수당 106만 원이 지급됐는데, 45만 원 안팎 숙소비와 세금, 4대보험 등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평균 50만 원 수준이다. 중개기관은 이달 근무에 대한 임금은 다음 달 20일에 지급할 예정이다.
이탈한 필리핀 노동자 2명은 제조업, 농어촌 등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업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미등록 상태(불법 체류)를 감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는 일손 부족으로 외국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여 명 중 불법체류자는 42만여 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반응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외국인 무관하게 일자리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인력 이탈이 발생하기에 결국 일자리 질 개선이 핵심"이라면서 "이주 노동을 선택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인데 그때 비교 기준은 본국 임금이 아니라 이주한 국가의 다른 업종(제조업 등)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대체 일자리가 있는 이상 인력 이탈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조 연구위원은 특히 지금처럼 중개기관이 있는 '고용허가제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확대 추진을 검토 중인 '사적 계약 방식'(이용자 가정과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일대일 개별 계약)을 도입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간 업체가 확실히 있는 현 상황에서도 이탈이 발생하는데, 사적 계약 방식이 도입될 경우 이탈 책임을 중개기관이나 지자체가 지기도 힘들어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정통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이주 노동 정책을 펼친 최악의 사례"라며 "이러다가는 '악덕 직업소개소'라는 오명으로 더 이상 한국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인 서울시는 이날 "가사관리사의 조속한 복귀를 위해 본국의 부모님 등 다방면으로 연락 중"이라며 "급여 지급 방식을 '월급제'에서 '주급제'로 개선하는 등 근무 환경 개선을 고용부와 적극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