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날 유족 등에 따르면 장 원장은 새벽 1시 35분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장 원장은 지난 7월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투병 사실을 알린 바 있다. 당시 고인은 "당혹스럽긴 했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며 "자연의 순환질서 곧 자연의 이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사람이기에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고인은 1945년 경남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마산공고 졸업 후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에 나섰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사건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본격 투신했으며, 당시 전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를 만나 시신을 인수한 뒤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전 열사 관련 자료를 수집한 뒤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2009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등으로 1970~80년대에 9년간 감옥에 수감됐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원장은 2019년 한 인터뷰에서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인 1990년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2년 총선을 시작으로 일곱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모두 떨어졌다. 마지막 선거였던 2020년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나섰다. 이처럼 한평생 노동, 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제도권 정치에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부터는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등을 주장했다. 이후 원외정당인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유족은 부인 조무하씨와 딸 하원, 보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