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과 연막의 北 농축우라늄

입력
2024.09.20 17:1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핵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한 미국은 우라늄 핵폭탄(핵물질 U235)과 플루토늄탄(Pu239) 제조를 동시 진행했다. 미국은 고농축우라늄을 얻기 위해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원심분리기 시설을, 워싱턴주 핸포드엔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을 만들었다. 일본 히로시마엔 ‘리틀보이’로 알려진 우라늄탄이, 나가사키에는 ‘팻맨’으로 불린 플루토늄탄이 투하됐다. 일반에 잘 알려진 트리니티 원폭실험은 플루토늄탄이며, 우라늄탄은 실험도 하지 않았다. 폭발력을 확신했다는 얘기다.

□ 최초의 핵무장 해제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고농축우라늄 제조시설을 바탕으로 1970년대말 우라늄탄 6기를 만들었다. 남아공은 노출이 불가피한 플루토늄 제조와 달리 외부 감지가 불가능한 이점을 활용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 넬슨 만델라 석방 등 민주화 열기 속에 데 클레르크 백인 정부는 93년 핵무기 해체를 대외에 공표했다. 미소 냉전의 대립 속에 나미비아 등 주변국과의 갈등이 핵개발 기폭제가 됐으나, 자발적 핵폐기는 곧 들어설지 모를 흑인 정부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 스스로 그러했듯이 미국은 90년대 초 영변 핵시설을 포착한 이후 플루토늄과 함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의심했다. 2000년 들어 파키스탄 핵물리학자인 칸 박사의 '핵무기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이 농축우라늄 설계도 입수와 함께 원심분리기 소재인 특수 알루미늄 반입 사실이 포착됐다. 94년 핵동결을 골자로 한 북미 제네바 합의가 깨지고 '2차 북핵 위기'가 빚어진 배경이다.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인 김계관은 특수 알루미늄은 중국 항공사에 납품하기 위해 수입한 것이라고 발뺌했다.

□ 북한이 2010년 미국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에게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줄 때만 해도 우리 정부도 긴가민가했다. 무기급 생산에 20년 이상 걸릴 걸로 봤던 터다. 연막과 기만 속에 농축우라늄을 개발해온 북한은 최근 수백 기의 원심분리기 가운데 선 김정은 사진을 공개했다. 플루토늄은 물론 우라늄탄까지 확보한 자신감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6자회담이 순조롭던 때 북한 핵무기를 미국 오크리지에서 해체하려던 한미의 계획은 너무 앞선 꿈이었다.



정진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