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올 때 강습 못 해도 '출석' 처리… 골프는 우천 환불 되는데, 왜 테니스만?

입력
2024.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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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열풍 속 소비자 보호 뒷전]
우천 강습 취소 시 보강, 환불 전혀 없어
골프는 공정위 표준약관 통해 환불해줘 
전문가들 "가이드라인 신속 마련할 필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비가 와서 수업이 취소되거든요. 환불되냐고요? 에이, 그런 건 절대 없어요."

19일 서울의 한 테니스장에서 만난 직장인 송모(33)씨의 푸념이다. 최근 그는 6개월 넘게 계속하던 테니스 수강을 취소했다. 비가 와서, 혹은 공휴일이라서, 한 달에도 몇 번씩 수업이 취소되지만 보강도 환불도 없었단다. 테니스 열풍 탓에 수강 경쟁이 심해, 문제 제기도 쉽지 않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싫으면 나가라는 분위기다. 송씨는 "좋은 코치님 구하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며 "불만이 있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테니스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강습 소비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날씨처럼 불가피한 요인으로 강습이 취소되어도 전혀 환불이 이뤄지지 않는 등 피해가 늘고 있지만, 관련 가이드라인 제정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비 오면 취소, 보강은 동영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정점을 찍었던 골프의 인기가 꺾인 뒤, 테니스는 2030세대의 인기 스포츠로 떠올랐다. 골프에 비해 저렴하게 즐기면서도 운동량은 높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다. 22일 전자상거래 업체 11번가에 따르면, 최근 3개월(6~8월)간 테니스 가방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42% 증가했다. 같은 기간 테니스 경기 용품과 테니스화 매출도 각각 22%, 14% 늘었다.

그러나 치솟는 인기와 달리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정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강습생 오모(28)씨는 "실외 강습을 알아볼 당시 6개 업체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전부 우천 시 환불 규정이 없었다"며 "보강 대신 동영상 강의를 보여준다는 곳도 있어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실내 강습을 받고 있다. 실외 강습을 1년째 이어가는 직장인 손모(27)씨는 "장마철엔 한 달에 레슨을 한 번만 받은 경우도 있었다"며 "실내는 정식 규격을 갖춘 곳이 많지 않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실외에서 강습을 받아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업체도 할 말은 있다. 수강신청 단계에서 환불 규정을 미리 안내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강사들이 이미 돈을 들여 실외 코트를 예약했기 때문에 환불이 어렵다는 이유도 들었다. 테니스 강사 A씨는 "우리도 1년 단위로 코트 임대 계약을 맺는데, 비가 와서 수업을 못 했다고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며 "이게 싫다면 실내 테니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는 환불되는데요?

그러나 서핑, 골프 등 다른 실외 스포츠의 사례를 보면 테니스의 이런 관행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는 '골프장 표준약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약관엔 '강설·폭우·안개와 같이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로 사업자가 임시 휴장을 하는 경우 예약금을 환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기상 문제로 인해 강습이 취소되어도 환불하지 않는다'는 약관 조항은 현행법상 무효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그룹 소속 변호사는 "약관규제법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약관의 효력은 무효"라며 "아무리 테니스 업체에서 미리 안내해도 우천 시 강습 취소 같은 불합리한 조항은 무효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국소비자원에는 테니스 강습과 관련한 분쟁 해결 기준이 아직 없다. 사례가 충분히 모이지 않아 가이드라인 제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재홍 소비자와함께 사무총장은 "국가기관은 보통 피해 사례가 누적되면 그제야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며 "피해가 더 늘기 전에 이제라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예방적 차원에서 정부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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