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트럼프는 두 번이나 총격에 당할 뻔했나… 미국 민주주의에 닥친 ‘퍼펙트스톰’

입력
2024.09.18 17:00
2면
유세장 이어 골프장서 다시 암살 시도
트럼프 “바이든·해리스 언사 탓에 피습”
적개심이 총기 문화 만나 정치 폭력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노린 암살 시도가 또다시 발생하면서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판에 초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선 총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두 달 새 두 번이나 넘겼다. 이념적 양극화와 함께 날로 커지는 적개심이 곳곳에 널린 총기와 만나 쉽게 정치 폭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말이 부른 증오”

1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이틀 전 이뤄진 암살 시도를 수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이날 약속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경호 강화에 필요시 예산을 추가 투입한다는 데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도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암살 시도는 올 들어 두 번째다.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 유세 도중 총격에 귀를 다친 그는 2개월 후인 지난 15일에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본인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또 암살 표적이 됐다. 총을 쏠 기회를 노리고 골프장 주변에 약 12시간 동안 은신하던 용의자는 비밀경호국(SS) 요원에 의해 발각된 뒤 총을 버리고 도주했지만, 1시간도 안 돼 인근 도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법무부는 16일 암살 미수범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58)를 △중범죄자 총기 소유 △일련번호 없는 총기 소지 등 2건의 혐의로 기소하고 구속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탓이 크다고 인식한다. 그는 16일 폭스뉴스 디지털 인터뷰에서 “그들(바이든과 해리스)의 레토릭이 내가 총에 맞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표현하는 두 사람의 언사 때문에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됐다는 얘기였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늘 폭력을 강하게 규탄해 왔다. 폭력을 조장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총은 죄가 없다?

민주당은 적반하장이라는 입장이다. 지금껏 폭력을 조장해 온 것은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라는 것이다. “오하이오주 소도시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출신 이주민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 등 공화당 측 주장이 최근 사례다. 반(反)이민·혐오 정서에 편승한 음모론이 퍼지며 스프링필드의 학교와 시청, 병원에 폭탄 테러 위협이 가해졌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즉각 비난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우군’이 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엑스(X)에 “아무도 바이든·카멀라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가 논란이 일자 농담이었다며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거듭된 ‘트럼프 암살 시도’는 극단주의 기승 추세의 단면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버나디노캠퍼스 명예교수 브라이언 레빈은 “정부 관리나 공공시설, 소외 집단 등을 겨눈 ‘표적 폭력’이 최근 몇 년간 심해졌다. 공격적이고 감정에 호소하는 메시지가 널리 퍼진 결과”라고 미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정치적 양극화·불관용, 총기 접근에 너그러운 미국 문화가 맞물려 상승한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니카라과 대선 후보를 지낸 펠릭스 마라디아가 미국 버지니아대 연구원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퍼펙트스톰(여러 악재의 복합 작용으로 인한 초대형 위기)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NYT는 “미국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했고, 11월 대선이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게 전 세계의 우려”라고 짚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위용성 기자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