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재명 여야 대표가 1일 회담에서 '지구당' 부활에 합의했다. 폐지 20년 만이다. 지구당은 그간 '돈 먹는 하마'로 불렸다. 모처럼 부활할 시점이다. 하지만 과제는 많다. 관련 법의 국회 통과도 불투명하고,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 지구당 부활, 무엇이 걸림돌인지 살펴봤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8일 기준 지구당 부활 관련 법안 10여 건이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수치가 그렇다. 아직 여야 간 심도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룰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여전히 논의 중이다.
하지만 여야 대표가 모처럼 합의한 만큼 지구당 부활은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관건은 지구당 부활에 부정적인 여론이다. 지구당은 과거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엠브레인퍼블릭 등이 지난 6월 10~12일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지구당 부활 반대는 46%, 찬성은 20%에 그쳤다. 여야 대표들의 합의와 별개로 여론은 만만치 않다.
첫 단계는 국회에서 관련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표를 던질 현역 의원들이 미온적이다. 지난 국회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5월 30일 정개특위 회의록을 보면 "지구당을 살리자는 것은 고비용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정희용), "과거로 회귀하는 건데 국민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김성원) 등 우려가 잇따랐다. '지역당' 명칭 사용, 설치 단위(지역구 혹은 구·시·군 단위)를 비롯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국 여야 합의는 없었다.
소수 정당은 어떨까.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지구당 부활에 비판적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9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구당을 되살리면 민의를 더 잘 수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지구당 부활은 거대 양당 소속 정치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지구당 부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지구당이 공식화하면 실제로 규정한 것보다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등 제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정치자금 운용이 깨끗해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며 "우회, 탈법 영역을 전부 방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경계했다. 특히 폐단이 재발하는 걸 막으려면 보조금 지급 및 당비 사용 등으로 운영비를 마련하고, 회계 관리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등 보완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구당의 사당화 문제도 논란이다. 이 교수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지역위원장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어떤 영향을 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라는 목적을 내세운다면 지구당이 중앙당과 견제·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국회의원의 지구당 위원장 겸직 금지 등 운영상 자치화를 유도하는 대안 없이 재도입해서는 부조리만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