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추석 휴전'이 끝나자마자 정기국회를 둘러싼 여야의 '가을 전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당장 연휴 직후 열리는 19일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우원식 국회의장 중재로 미뤄진 김건희특검법과 채상병특검법, 지역화폐법을 강행 처리하겠다고 못 박았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보이콧을 비롯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을 위한 무제한토론) 카드까지 재차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야당의 독주를 막아서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정국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19일 본회의는 여야 공히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민주당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입장이다. 연휴 전 12일 본회의에서 쌍특검(김건희특검·채상병특검)법과 지역화폐법 상정을 밀어붙였지만, 우 의장의 결단에 일주일간 유예된 만큼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강경 기류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18일 통화에서 "3개 법안 일괄 상정 방침엔 변동 없다. (우 의장이) 12일 본회의를 연기할 때부터 19일은 확답받았던 부분 아닌가"라고 말했다. 연휴 기간 '의료 협치'를 명분으로 '강제휴전'을 독려했던 의장실도, 여야의정협의체 협상이 진척 없는 상황에서 더는 중재를 입에 올리기가 곤란해졌다. 이에 의장실 관계자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법안 단독처리에 맞서 본회의 보이콧은 물론 '2박 3일 필리버스터'까지 예고하고 있어 격돌이 불가피하다. 박준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본회의 날짜는 26일뿐이다. 여야 합의 정신을 위반하는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유력해보인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특검법은 1번, 채상병특검법은 2번이나 국회로 돌려보낸 전례가 있다. 지역화폐법 역시 여당과 대통령실은 "현금살포법"이라고 원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거대 야당 법안 단독 처리 → 대통령 거부권 행사 → 재표결 부결로 법안 폐기'라는 소모적 대치 정국이 또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3개 법안을 모두 반대해 국회로 돌려보내면, 취임 이후 총 24번째 거부권 행사로 자체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민주당은 26일 본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이 국회로 돌려보낸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법과 방송4법, 노란봉투법 등 이른바 거부권 법안도 재표결에 부쳐 "다 털고 가겠다"(강유정 원내대변인)는 입장이다. 거부권 법안이 통과되려면 200명 의원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여당의 협조가 없는 이상 폐기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재표결을 밀어붙이는 건,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정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진 대통령이 똑같은 방식으로 국민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지지율은) 더 급전직하하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 책임을 더 세게 부각하며 압박 고삐를 더 틀어쥐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정기국회에서 4개 국정조사('채상병 순직 은폐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방송장악', '동해유전개발 의혹') 추진도 벼르고 있지만, 국정조사는 여야 합의 사안이라 단독 국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거부권 대치가 정기국회를 뒤덮으면서 여야가 그나마 물꼬를 텄던 민생 협치 논의마저 '흐릿'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협의체는 의료계 설득에 난항을 겪으면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총선 공통공약을 논의하겠다며 띄운 여야 정책위의장 간의 민생 협의체 회동 움직임 역시 쏙 들어가 버렸다. 민생 공통공약 협의체는 11년 만에 성사된 여야 대표회담의 유일한 성과물이다. 민주당 정책위 핵심 관계자는 "당정 간 입장이 통일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꼼짝이나 하겠느냐. 공통공약 논의도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고 회의적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