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면 천문학적 양의 전력을 쓸 예정이지만 국내 송배전망 건설 사업이 지역 주민 반발로 차질을 빚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도 전력망이 제때 깔리지 않으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19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2015~2023년 국내 송·변전망 구축 사업 총 42개 중 예정된 일정에 맞춰 공사가 끝난 사례는 7개(17%)에 그쳤다. 전력망 사업은 ①입지 선정→②사업 승인→③지원·보상→④시공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최근 거의 모든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반대로 계획이 미뤄져서다.
대표 사례가 서해안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경기 남부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345킬로볼트(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6월 착공 예정이었지만 지역 주민의 민원으로 사업이 150개월 넘게 미뤄졌다. 당진시 일부 주민이 민원을 제기해 입지 선정이 78개월 미뤄졌고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행위 허가 불허, 공사 중지 명령 등으로 다시 72개월 늦춰졌다. 비슷한 이유로 345㎸ 당진 화력발전소(TP)-신송산 전력구 건설 사업도 90개월 동안 지연됐다. △345㎸ 신시흥-신송도(66개월) △345㎸ 신장성S/S, 송전선로(77개월)도 대표 전력망 지연 사례다.
공사 지역 주민을 설득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환경 단체,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까지 가세하면 건설 계획은 기약 없이 미뤄질 수도 있다. 최근 경기 하남시의 제동으로 동서울변환소 관련 공사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선로(HVDC) 건설 사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사업은 강원 횡성군, 홍천군 등에서 주민 민원으로 입지 선정이 66개월 늦어졌다. 여기에 8월 하남시가 동서울 변환소에 대한 건축 행위를 불허하고 한전이 이에 대해 행정 소송 등으로 대응하기로 하면서 얼마나 더 미뤄질지 예측할 수 없다. 첨단 산업 투자가 늘면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전력망 건설 지연에 발목이 잡히면서 투자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중앙 정부 주도로 전력망 건설을 추진할 수 있는 '전력망 특별법'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고질적으로 겪는 전력망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올해 여야가 합심해 전력망 확충 관련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