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전화 왔죠?" 김 여사-증권사 직원 통화... 방조 흔적인가, 단순 보고였나

입력
2024.09.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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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판결서 드러난 김 여사의 행적]
주가 2400원때 거래 직후 2회 통화
활용 계좌 3개 중 1개는 직접 주문
범행 인지, 구체적 소통은 규명 필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전주'(錢主·주가조작 자금원)가 항소심에서 시세조종 방조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자, 비슷한 상황이었던 김건희 여사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시세조종 사건에선 같은 전주라 해도 △주가조작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기소 여부가 갈리게 될 것이라는 게 법조인들의 의견이다.

법원은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에서 전주 손모씨의 방조 혐의를 인정했다. 법률상 '방조'는 범행 준비나 범행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을 가능·촉진·용이하도록 하는 지원행위다. 이를 주가조작 사건에 대입하면 ①주범의 행위가 주가조작임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 ②그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간접 행위가 있었음이 입증돼야 방조죄가 성립한다. 단순히 자기 계좌를 건네 투자를 일임한 것이라면, 위탁받은 사람이 통장으로 불공정행위를 했더라도 계좌주까지 처벌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전주들은 어땠나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으로 기소한 방조 혐의자는 손씨 포함 총 5명이다. 법원은 손씨가 시세조종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도 이를 돕기 위해 자기 자금을 동원했고, '2차 주가조작' 주포(설계자) 김모씨의 요청에 따라 일부 대량 매수를 하거나 매도를 포기하는 등 쉽게 시세조정을 하도록 했다고 봤다.

검찰이 약식기소했다가 정식 재판으로 넘어간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수자들 중, 3명에 대해서도 방조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은 주포 김씨로부터 비정상적 매수 권유를 받아 그의 주가조작을 눈치챘으면서도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A씨는 2012년 4~12월 자기 계좌 등을 이용해 주식 5만4,085주를 매수하고, 김씨와 상호 협의하에 종가관리를 했다.

증권사 직원 B씨는 김씨의 권유를 받은 2012년 4~11월 자신의 고객 명의 계좌를 이용해 주식 6만9,575주를 매수하고 김씨와 상호 협의해 통정매매 등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1년 11월 주식 매수 권유를 받은 C씨는 이듬해 12월까지 자신과 배우자 계좌 등을 이용해 7만1,000주를 매수했다. 이들 모두 △주가조작이라는 인식 △범행을 쉽게 하도록 해준 행위라는 두 요건을 만족했다.


김 여사의 행위는

문제는 김 여사가 이 두 요건을 충족하고 있느냐다. 계좌 세 개가 도이치모터스 2차 주가조작 범행에 사용된 것은 법원에서 모두 인정됐으나 이 가운데 두 개는 일당에게 투자일임된 계좌로 분류됐다. 김 여사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취지다.

남은 한 개 계좌의 경우, 김 여사가 직접 매도 주문을 넣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다만 해당 통정매매에서도 김 여사가 일당과 지속적 연락을 했다거나, 주가조작에 대한 김 여사의 인식에 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에서는 증권사 직원과 김 여사 사이 두 차례 통화(2010년 1월 25, 26일)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증권사 직원은 김 여사에게 전화해 "2,439원에 4만 주 샀다" "2,440원까지 8,000주 샀다"고 매수 거래를 보고한다. 이에 김 여사는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라거나 "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라고 직원에게 되묻는다. '그분'이 거래를 주도하고 김 여사가 방조했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2심 재판부는 "사실상 권오수(도이치모터스 전 회장) 등의 의사로 운용되고 있음이 확인될 뿐"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 대화가 이뤄진 시기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때다.

검찰은 방조죄 성립 요건, 김 여사의 인지 여부 및 일당과의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사법처리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설령 김 여사가 직접 대량 매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죄를 묻기 위해서는 그가 주가조작을 알았는지, 일당과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는지가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