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에서 배상 판정을 받았던 정부가 해당 판정을 취소하라는 1심 소송 패소에 불복해 항소했다.
13일 법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12일(현지시간) 엘리엇 ISDS 취소소송을 심리한 영국 1심 법원의 각하 판결에 항소했다. 관계부처, 정부 대리 로펌, 외부 전문가들과 1심 판결에 대해 검토한 결과 해당 판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해석 등과 관련한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려 항소했다는 설명이다.
한미 FTA 해석 문제는 정부가 낸 취소 소송을 제기한 주요 근거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공단에 찬성투표 압력을 행사한 결과로 손해를 봤다"면서 2018년 7월 ISDS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선고일 환율 1,288원 기준 약 690억 원) 및 법률비용과 지연이자 등 1,300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이 사건이 중재판정부 판정 대상이 아닌데도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미 FTA 11.1조에 따라 어떤 사안에 대한 ISDS 관할이 인정되려면 '당사국이 투자 또는 투자자와 관련해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여야 하는데, 국가기관이 아닌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는 정부의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재지인 영국 1심 법원은 정부가 근거로 든 한미 FTA 11.1조의 해석 문제가 영국 중재법상 중재판정 취소 사유인 '실체적 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한미 FTA 11.1조는 당사국의 실체적 의무(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등)를 정하는 11장 1절에 위치해 있고 중재합의 관련 조항(11.6조) 등 ISDS 제기 절차 관련 규정은 11장 2절에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중재합의 관련 규정이 아닌 11.1조를 놓고 ISDS 판정 취소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정부는 11.1조 1항에서 '이 장은 다음에 관하여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에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11.1조 내용이 1절은 물론 11장 전체에 적용된다고 봤다. 영국 1심 법원이 11.1조를 잘못 해석했다는 뜻이다. 한미 FTA 11.1조와 유사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101조 등을 다룬 다수 ISDS 판정례에서 해당 조항을 '관할 요건' 등으로 해석한 점도 짚었다.
항소가 받아들여질 경우 사건은 1심 법원으로 환송돼 정부가 주장한 중재판정 취소 사유에 대한 본안 판단을 받게 된다. 법무부는 항소를 제기한 이유에 대해 "바로잡지 않으면 향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언을 가진 투자협정의 해석 및 적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부당한 ISDS 제기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언을 가진 투자협정'이란 또 다른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매니지먼트와의 ISDS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메이슨 역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과 관련해 ISDS를 제기했고, 정부는 7월 중재지인 싱가포르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