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공화 양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첫 TV 토론에선 두 후보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법 이민과 관련된 ‘가짜 뉴스’를 퍼나르며 표심을 자극했지만 ‘개·고양이 식용’ 발언으로 제 발등을 찍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의 거짓말은)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라며 노련함을 보였으나 정책 공약이 모호하다는 우려는 털어내지 못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전날 TV 토론 시작 59초 만에 ‘위험한 이민자’라는 말을 꺼냈다”며 “이민 문제를 다른 모든 이슈를 가리는 만화경으로 썼다”고 짚었다.
트럼프가 관세 및 경제 정책을 묻는 첫 주제부터 불법 이민 문제를 거론하며 토론을 ‘기·승·전· 불법 이민’으로 몰아가려 한 건 다분히 전략적이다. 트럼프는 “이민자 수백만 명이 정신병원과 감옥 출신”, “범죄자를 보낸 베네수엘라는 범죄율이 67% 감소했다” 등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민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 역대 선거 득표에 유리했다는 경험적 계산이 깔려 있는 발언이었다.
이민 문제가 해리스의 약점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반(反)이민 정서가 강해지면서 민주·공화 양당 모두 이 문제에 있어 우경화하고 있기 때문에 해리스가 강하게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 본 것이다. NYT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강화한 이민 정책에는 트럼프가 임기 동안 시행하려 했던 반이민 조치와 유사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TV 토론 결과 트럼프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당장 “이민자가 개·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발언으로 아이티계 미국인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4년간 약 1,000만 명의 이민자가 입국했고, 상당수는 투표권이 있는 그린카드(영주권)를 가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 아이티 출신 이민자는 105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리스는 ‘미래’를 거듭 강조하며 트럼프와 차별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책 공약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약점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해리스는 TV 토론에서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자”, “미래로 가는 진로를 계획하자”고 강조했다. 트럼프를 ‘과거’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반면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 외에 대통령이 되면 국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 CNN방송은 "해리스는 여전히 핵심 질문은 피했다"며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는 해리스가 중산층의 삶의 질을 어떻게 끌어올리겠다는 건지, 프래킹(셰일가스 시추 기술인 수압파쇄법)이나 다른 문제에 또다시 입장을 바꾸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는 해리스의 전략을 간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해리스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와 어떻게 다른지 물고 늘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강점으로 꼽히는 경제·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날 선 질문을 하지 못했다. WSJ는 “트럼프가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14번이나 언급했다”며 “이 때문에 해리스는 자신이 바이든이 아니라고만 하면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