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응급실 대란 경고하더니… 일부 의사들, 비상진료 어깃장 '눈살'

입력
2024.09.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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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소방·경찰 등 추석 응급의료 총력전
의협, 회원들 휴업 독려로 비상진료 방해
"국민 더 죽어야" 의사 게시판 막말 '충격'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대란 우려가 제기되자 의료계부터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소방, 경찰까지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일부 의사들은 도리어 비상진료 체제에 차질을 주고 불안을 조장할 수 있는 행태를 보여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응급실 근무 의사 블랙리스트가 등장하더니 급기야 의사·의대생 전용 커뮤니티에는 “국민이 더 죽어나가야 한다”는 패륜성 글이 다수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 방지 '총력전'

정부는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11일부터 2주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하며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응급의료체계를 총력 지원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 44곳 외에도 지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 진료 역량이 뛰어난 15곳을 거점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해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KTAS) 1, 2등급(심정지, 무호흡, 뇌출혈 등)에 해당하는 중증·응급환자를 우선 수용한다. 중증환자만 치료하는 전담 응급실도 29곳 이상 지정하기로 했다. 의료진 진찰료와 중증·응급수술 수가(의료행위 비용)는 평시 대비 3배 이상 올린다.

의료진도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실을 단축 운영 중인 세종충남대병원과 강원대병원도 추석 연휴에는 24시간 문을 열기로 했다. 휴일을 반납하고 문을 여는 동네 병의원은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3,000곳이 넘고, 한의원 106곳과 한방병원 183곳도 휴일 진료에 동참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는 평시 대비 응급실 내원 환자 수가 70%가량 증가하는데, 당직 병의원이 경증·비응급환자를 맡으면 응급실 과부하가 완화될 것으로 정부와 의료계는 기대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비상진료 관리 상황실을 꾸리고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소방은 응급환자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펌뷸런스(응급구조 장비를 실은 소방펌프차) 1,458대, 소방헬기 31대를 출동 대기시켰고, 경찰은 응급실 난동과 의료진 폭행에 대해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증상이 가벼울 경우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자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9일 기준 전체 응급실 내원 환자(일평균 1만6,239명) 중 경증 비응급 환자 비중은 41%(6,665명)로, 평시(8,285명) 대비 80% 수준으로 내려왔다.

동료 의사 이어 국민 상대로도 '막말'

사회 각 분야가 긴장감 속에 추석 연휴를 대비하고 있지만, 일부 의사단체는 비상진료 협조는커녕 앞장서 의료대란을 조장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앞서 2일 회원들에게 ‘2024년 추석 연휴 진료 안내문’을 보내 “이번 추석에는 자신의 건강과 가정의 안녕을 먼저 지키기 바란다”며 사실상 휴업을 독려했다. “응급 진료 이용 시 정부 기관 또는 대통령실로 연락하기 바란다”고 비꼬기도 했다. 다만 이날 발표한 대국민 입장문에서는 “추석 연휴 의료공백에 대한 걱정이 크시겠지만, 의사들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진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을 ‘부역자’로 지칭하며 신상 털기를 자행하는 의료계 블랙리스트에 응급실 근무 의사, 파견 군의관 명단이 최근에 대거 추가된 것도 추석 연휴 비상진료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의협은 블랙리스트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명단 작성 이유가 “절박함” 때문이라며 정당화하는 듯한 입장을 취해 빈축을 샀다.

또 11일에는 의사나 의대생만 가입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부가) 정신 차리려면 더 죽어나가야 한다” “XXX들 매일 1,000명씩 죽어나갔으면 좋겠다“는 글까지 올라와 충격을 안겼다. 국민을 ‘조센징’ ‘개돼지’라는 멸칭으로 표현하며 “더 죽이면 이득이다” “죽는 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추석 응급실 대란 진짜 왔으면 좋겠는데 부역자들이 추석 당직 설까 겁난다”고 언급한 게시물도 있었다.

경찰은 병원을 지키는 의사들을 온라인상에서 모욕, 협박하는 행위에 대해 현재까지 42건을 수사했고, 조사 대상 45명 중 3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응급실 근무 의사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용의자 5명을 특정해 수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의대생 커뮤니티 게시물에 대해서도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대로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이날 정부는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군의관 250명 배치를 완료했다. 이 가운데 응급의학 전문의 8명을 포함해 15명 규모로 우선 파견됐던 군의관 중에는 응급실 배정을 거부하거나 업무 시작도 전에 원부대 복귀를 요청한 사례가 속출했다. 임상 경험이 부족하고 병원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는 게 업무 불가 이유였지만, 군의관 대다수가 전공의 수련을 마친 ‘전문의’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종합병원 관계자는 “의사라는 자의식에 빠져 군인 신분을 망각하고 있다”며 “명령 위반이 확인될 경우 징계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