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김치·와인 계열사 강매 의혹'으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불복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법원 판결의 영향으로 이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고법 행정6-2부(부장 위광하)는 이 전 회장이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을 취소하라"고 제기한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11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특별한 선고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공정위는 2019년 6월 태광그룹 19개 계열사들에 과징금 21억8,000만 원을 부과하고, 이 전 회장에게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룹이 2014년 4월~2016년 9월 총수 일가 소유 업체인 휘슬링락CC와 메르뱅에서 생산한 김치∙와인을 계열사들에 강매해 33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다.
이 전 회장은 행정소송 1심에선 승소했다. 2심제로 진행되는 공정위 사건의 1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22년 "경영기획실을 통해 이뤄진 모든 결정사항에 이 전 회장이 관여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며 계열사들에 부과된 과징금만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이 판단을 뒤집고, 이 전 회장의 시정명령 부분을 패소 취지로 판단하면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 전 회장이 태광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 토대 마련 목적으로 강매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보는 공정위의 시각이 맞다고 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이 사건 거래는 휘슬링락CC와 메르뱅에 안정적 이익을 제공해 특수관계인에 대한 변칙적 부의 이전 및 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 등에 기여했으므로, 이 전 회장은 두 회사의 이익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경영기획실이 회장 몰래 강매 거래를 할 동기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함에 따라, 3년 전 이 사건에서 이 전 회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검찰도 관련 수사를 재개할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날 "같은 내용에 대한 고발이 있어 사건은 계속 수사 중이었다"며 "법원 판결을 검토해 수사에 참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 전 회장과 계열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년여 수사 끝에 강매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조사된 김기유 전 경영기획실장만 재판에 넘기고 이 전 회장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기소했다.
이 전 회장은 2019년 횡령∙배임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확정받고 만기출소 후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복권됐다. 그러나 계열사를 동원해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올해 또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