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막을 비법 ①경증환자 전용 상담센터 ②빈곳 바로 찾아줄 컨트롤타워

입력
2024.09.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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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범 순천향대서울병원 교수 제안]
응급실 위기 심화에 시스템 개선 절실
일본, 7119 센터서 경증환자 우선 상담
환자 분산, 숨은 중증 판별 등 효과 톡톡
응급의료 주체들 결집 권역 컨트롤타워
실시간 정보 파악해 이송·전원 조율해야
"병상이 다 있다고 돼 있어가지고요."(119 구급대원)
"저희 사람 많아요, 지금."(응급실 당직 의사)

지난달 한 119구급대원이 공개한 응급실 당직 의사와의 대화 녹취록이다. 해당 구급대원은 전산 시스템상 병상 여력이 남아 있는 응급실에 환자를 이송하려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 된다"는 거절이었다. 응급환자가 치료해줄 병원을 찾아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의 단면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대란 우려까지 나오면서 "응급의료체계의 뿌리부터 바꾸자"는 요청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증환자 상담 '7119 구급 안심센터 운영'

응급의료체계를 연구해온 박준범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시스템 개선 방향으로 경증환자 상담센터 설치를 제시했다. 경증환자 상담센터는 응급실을 찾는 환자 분산이 가장 큰 목적이다. 경증부터 중증, 초응급까지 환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몰려들면서 응급실에 과부하가 걸리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이다.

박 교수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환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문적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경증환자 상담센터가 설치되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를 1차적으로 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7119 구급 안심센터'라는 경증환자 상담센터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119와 더불어 이원화 체제로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다. 환자가 자기 상태의 심각성을 알고 싶을 때 7119로 전화하면 의사나 간호사, 상담원이 증세 및 부상 정도를 청취한 뒤 중증도를 판단한다. 상담사는 환자에게 즉시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 할지 안내해준다. 환자 근처에 문을 연 병의원과 약국 정보도 제공한다.

경증환자 상담센터는 증세가 애매한 경증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이 경증인 줄 알았던 중증환자를 찾아내는 효과도 있다. 일본 소방청은 7119 운영 효과로 △밤사이 열이 발생한 아이를 응급실로 데려가야 할지 고민했던 주부가 상담을 받은 뒤 다음 날 소아과를 방문한 사례 △남편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낀 아내가 7119 상담을 통해 즉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서 뇌경색을 치료한 사례 등을 소개한다.

한정된 의료 자원의 효율적 분배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 소방청은 "7119 구급 안심센터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긴급한 경우엔 구급차를 요청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증상에 따른 의료기관 진찰을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만족도는 높다. 2022년 오사카시에서 발표한 '7119 구급 안심센터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89.3%가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흩어진 응급실 정보…"응급실 컨트롤타워 세우자"

박 교수는 '권역별 응급실 컨트롤타워' 설치도 제안했다. 서울권, 경기남부권, 부산권 등 권역별로 응급실 상황을 총괄하는 시스템이다. 지자체와 개별 응급실, 소방과 보건 등 응급실 관련 주체들이 모두 참여해 잔여 병상과 의료진 투입 상황, 배후진료 가능 과목 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 중심의 현행 응급실 정보는 개별 병원이 입력하는 정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진은 분초를 다투는 환자를 살피느라 정보를 실시간 입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그렇다 보니 현장과 상황판 사이에 적잖은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김수룡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대변인은 "전산에는 응급실이 열려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곳이 많다"며 "응급실마다 하나하나 전화해 확인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역별 응급실 컨트롤타워는 응급실 간 전원 조정자 역할도 할 수 있다. 전원이 필요한 경우 지금처럼 응급실이나 119구급대원이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돌릴 필요 없이, 컨트롤타워가 갖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전원 가능한 응급실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병원별로 흩어져 있는 응급실 정보를 더 촘촘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가지 않으려면 권역 안에서 적절한 전원이 빠르게 이뤄지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주용 기자